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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9.06.22 16:32
  • 호수 1262

[복지칼럼] 증명이 권리가 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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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일 당진북부사회복지관 관장

‘인간은 존엄하다’

이 문장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까? 세계인권선언문 1조에는 ‘모든 인간’에 대한 자유 그리고 존엄과 권리에 대한 동등함을 이야기한다. ‘모든 인간’에 포함되지 않는 인간은 없다. 그의 모습이나 생각 또한 구분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다른 인간에 대해 사회적 합의에 의거하여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에는 그대로 적용되고 있을까? 누구나 존엄하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과연 인간의 신성한 존엄성을 얼마나 지켜가고 있을까?

영화 <나, 다니엘블레이크>는 영국 복지제도에 대한 허점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이 영화가 이슈가 되었던 이유는 존엄성을 상실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이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각종 복지제도를 받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은 오로지 당사자의 몫이다. 자신이 얼마나 불쌍한지를 상대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은 자신의 존엄성을 스스로 바닥으로 내치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다.

2019년 7월 장애인 등급제가 폐지된다. 1988년도에 도입되어 31년 동안 유지된 등급제를 폐지하는 것은 장애인 당사자들에게는 오래된 숙원사업이었다.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사람의 상황은 ‘그 수만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장애인은 6개로 구분하여 등급이 정해졌다. 그리고 그 기준을 증명했을 때만이 그 등급에 맞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그 서비스라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것이었다.

높은 등급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밖에 없기에 장애인들은 더 불쌍해져야 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제도에서 어르신들이 장기요양등급 1등급을 받기 위해 연기까지 해야 하는 일부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개별적 특징은 무시되었고 오로지 등급으로 사람을 구분하여 서비스가 결정되는 방식은 인간의 존엄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 제도 아래서 얼마나 많은 장애인들이 31년 동안 자신의 불쌍함을 스스로 증명해 왔을지 생각하면 이 제도가 폐지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장애인 등급제가 폐지되고 이에 대한 개편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등급제가 만들어졌다. 기존 6등급으로 나누던 것을 이제는 중증과 경증으로 구분하여 ‘장애인등록증’에 기재 한 것이다.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구분하여 나온 장애인등록증은 나오자마자 심한 반발로 재검토에 들어갔다. 등급을 없앤 것이 아니라 등급을 단순화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다시 장애인을 구분하기 시작한 이 방식은 정부가 장애인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증명한 것과 다름없다. 제도가 없어지면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 제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어 인권의 분명한 가치가 반영되길 바란다. ‘모든 인간’이 이유 없이 구분되지 않고 인간적 존중이 당연한 권리가 될 수 있는 제도, 헌법을 지켜야 하는 정부의 당연한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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