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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상 당진2동 용연2통 노인회장
그리운 어머니…고마운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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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33년 용연2통과 용연3통의 경계에서 태어났다. 당시 용연리는 하나의 마을이었지만, 현재는 3개로 분통됐다. 굳이 구역을 나누자면 나는 용연3통에서 태어났고, 1970년대 초반 용연2통으로 이사 왔다. 당진을 벗어난 적이 없는 당진토박이로 이곳에서 소를 키우기도 하고 벼농사를 짓기도 했다. 나는 평생 농사꾼이었다. 지금도 자녀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
옛날 사진을 보면 ‘참 많이 늙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수줍은 산골소년이었던 나도 이젠 꽤 늙었다. 여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하늘나라로 평온하게 가고 싶다.

1. 그리운 나의 어머니
사진 속 여성은 내 어머니다. 어머니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 옛날사진을 현대식으로 인화해 거실에 걸어놓았다.
우두리 출신인 어머니의 故 이학보 여사는 50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내 나이는 21살로, 동두천에서 의무병으로 군 복무를 하고 있었다. 당시 큰형에게서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듣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때는 지금처럼 병원이 없어 사망 이유도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어머니가 다리몸살을 앓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도 다리몸살이 무슨 병인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가진 것 없이 다섯 남매를 가르치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

2. 동갑내기 아내 이정애
이 사진은 2003년 고희를 맞아 가족들과 찍은 기념사진이다.
고희연은 정미면 천의장터에 위치한 당진축협 관광농원에서 열렸다. 이곳은 당진축협이 운영한 연회장이었으며, 현재는 운영하고 있지 않다.
나와 동갑이라 고희연을 함께 한 아내 이정애는 고대면 대촌리 출신이다. 우리는 20살에 만났다. 부모님끼리 날을 정해 아내를 우리집으로 데려왔다. 아내가 대촌리에서 가마를 타고 우리집에 처음 온 날을 잊지 못한다. 
나와 아내는 4남1녀를 낳고 키웠다. 하지만 둘째아들이 5년 전 백혈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 인물도, 머리도 좋았던 자식이다. 아들이 먼저 떠나 아내가 많이 힘들어했다.

3. 4. 친구들과 함께 간 나들이
두 사진 모두 당진서부노인대학에서 놀러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세 번째 사진은 3년 전 현충원을 방문한 사진이고, 네 번째 사진은 지난달 경기도 파주시를 갔을 때 도라산역 앞에서 단체로 기념촬영한 사진이다. 나는 3년 째 매주 목요일마다 서부노인대학에 간다. 또 매주 금요일엔 새사랑 노인대학에 다닌다. 노인대학에서는 노인들에게 도움 되는 강의를 많이 해줘 좋다.

5. 마을 이장부터 노인회장까지
나는 지난 1972년부터 1983년까지 10여 년 동안 용연리 이장을 맡았다. 그리고 2004년부터 현재까지 용연2통 노인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장이든 노인회장이든 장기로 집권한 셈이다. 올해는 젊은 노인에게 회장직을 맡기고자 한다.
내가 이장을 봤을 때에는 육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이장을 중심으로 지역민들과 자갈을 이용해 길을 직접 포장했고, 집집마다 세금고지서를 전달하고, 세금을 받아오기도 했다. 
토박이가 봤을 땐 용연리는 부락형태와 가옥, 도로만 바뀌었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현재 우리 마을은 김범석 통장이 마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고, 주민들도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용연2통은 한마디로 화합이 잘 되는 마을이다.

 

>>한익상 회장은
·1933년 용연리 출생(현 86세)
·당진초·당진중·당진상고 졸업
·용연리 이장(1972년~1983년)
·용연2통 노인회장(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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