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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시대, 생태도시와 도시농업을 꿈꾸다 4 쿠바 아바나
생존을 위해 선택한 도시생태농업, 녹색관광도시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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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경제 무너지며 국가비상사태 선언 생존 위한 불가피한 선택
‘도시 유기농업’ 도시 녹지 늘리고 도심에는 대규모 공원 조성

태양이 바로 머리 위에 있다. 가만히 있어도 땀구멍이 열렸다. 이글거리는 볕살이 준 풍광은 놀라웠다. 절로 뛰어들게 만드는 카리브의 옥빛 바다, 가는 곳마다 붉은빛으로 살랑거리는 비올레다 나뭇잎, 장대 끝에 붓을 매달아 찍어 보고 싶게 하는 푸른 하늘. 사람들이 만든 경관도 남달랐다. 시선이 가는 곳마다 시야에 꽉 오는 중세시대 주택가, 발랄한 살사의 리듬에 맞춰 어디서든 몸짓을 던지는 사람들.

쿠바가 이토록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것은 나라가 선택한 ‘도시농업’이 한 몫을 한다. 쿠바는 국가비상사태에서 생존을 위해 도시농업을 택했고, 녹색도시를 넘어 녹색관광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아름답기에 가장 먼저 빼앗긴 비극의 섬

“이 섬은 사람이 일찍이 본 적 없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1492년 쿠바에 첫발을 디딘 콜럼버스는 항해 일지에 이렇게 썼다. 탐욕에 눈먼 탐험대에게는 ‘사람이 본 적 없는 땅’이었지만 이곳은 일찍부터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쿠바 전역은 순식간에 스페인의 식민지로 돌변했다. 원주민들은 단지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됐다. 어렵게 살아남은 원주민마저 스페인 사람들이 들고 온 신종 바이러스인 천연두에 목숨을 내줬다.
아바나의 혁명박물관에서 만난 당시 쿠바의 모습은 몇 번씩 눈을 감게 했다. 콜럼버스의 범선으로 시작된 전시물은 스페인군이 원주민을 처형한 것이 아닌 사냥하고 살육했음을 보여준다. 쿠바는 ‘가장 아름답기’에 ‘가장 먼저 짓밟힌 섬’이 됐다.

▲ 쿠바 아바나의 거리

거지와 매춘여성 넘치던 거리가 
희귀 중세거리로 탈바꿈

아바나는 중남미 각지에서 약탈한 보물을 본국으로 운송하는 선단의 집결지였다. 인구 또한 16세기 말 4000명에서 17세기 말 7만여 명, 19세기 초 25만 명으로 급증했다. 스페인이 물러갔지만, 쿠바는 미국의 신식민지가 됐다. 갱단이 몰려들면서 쿠바는 세계의 향락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아바나의 거리에는 거지와 매춘여성, 노숙자, 불룩 나온 배에 맨발의 끼니를 거르는 어린이들이 넘쳐났다.
1959년 독재정권을 물리치고 혁명에 성공한 카스트로가 나섰다. 먼저 카지노를 금지했고 매춘을 없앴다. 굶주림의 고통에서 어린이들을 구했다. 그러면서도 도시의 과도한 개발을 피했고 저렴한 아파트가 공급됐다. 쿠바 정부는 낡았지만 예전 주택을 허물지 않고 고쳐 공급했다. 이는 ‘올드 아바나’가 지금까지도 중세의 모습을 유지한 채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희귀도시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제봉쇄에도 특유의 경제 체제와 소련의 지원에 힘입어 라틴 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잘 사는 나라로 발돋움했다.
아바나의 혁명박물관에서 만난 해설자는 “군사정부 때 쿠바는 미국을 위한 나라였고 미국의 식민기지로 역할했다”며 “미국과 군사 정부에 맞서 혁명을 이룬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가 쿠바에서 존경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 쿠바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국가비상사태에서 선택한 생태농업

평온하기만 한 쿠바 전역에 상상을 초월하는 위기가 찾아온 건 1990년대다. 쿠바 경제의 젖줄 역할을 하던 소련 붕괴가 몰고 온 파장은 컸다. 농업국인 쿠바의 주요 생산품은 커피와 사탕이었고, 이를 수출해 쌀과 밀을 수입했다. 당시 국내 식량 자급률은 40%에 불과했다. 미국이 경제 봉쇄의 고삐를 더욱 당기자 순식간에 시민 대다수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백척간두의 위기 앞에 내몰렸다.
 “1991년 카스트로가 공식 연설에서 ‘콩과 식물성기름, 버터, 분유도 거의 남지 않았다’며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습니다. 식량 배급도 어린이와 여성, 노인에게 우선 지급됐고, 그마저도 점점 줄어들어 영양 부족 인한 실명자가 나타날 정도였습니다.” (혁명박물관 해설자)
아무리 둘러봐도 선택지가 없어 보였다. 그때 이들은 ‘도시 생태농업’을 택했다. 농약과 화학비료, 가축 사료, 심지어 트랙터와 부품까지 소련과 사회주의권에 의존해온 쿠바에서 ‘도시 유기농업’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 쿠바 정부는 아바나 중심부에 ‘나의 녹화계획'과’ 수도 공원 프로젝트'를 계획해 실행해왔다.

아바나는 녹색 도시, 녹색관광도시

아바나의 시내를 걸으면 몇 블록을 지날 때마다 공원 같은 숲을 볼 수 있다.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모로 성이 있는 해변까지 약 1.5km의 프라도(prado) 거리는 차가 아닌 사람 중심의 도로다. 숲이 우거진 한복판으로 사람들이 거닐고 양쪽으로 자동차가 지난다. 중앙 인도는 3개 차선이 됨직 할 만큼 폭이 넓다. 바닥에는 블록이 깔렸고 양옆에는 가로수와 벤치가 늘어서 있다. 이곳은 아침에는 출근길이고 한낮에는 거리 예술가들이 실력을 뽐내는 예술의 장이 된다. 해가 지는 저녁 무렵이면 사람들이 몰려나와 산책을 즐긴다. 때때로 시민들끼리 즉석 살사 댄스 경연이 열리기도 한다. 아바나의 거리는 휴식공간이고 삶의 공간이자 문화예술의 거리다.
쿠바 정부는 오래전부터 아바나 중심부에 ‘나의 녹화계획’과 ‘수도 공원 프로젝트’를 계획해 실행해 왔다. ‘나의 녹화계획’은 각 가정의 정원과 가로수를 중심으로 도시 녹지를 늘리는 것이고, ‘수도 공원 프로젝트’는 아바나 중심부에 대규모 공원을 조성하는 계획이다. 하천 정화작업 등 환경보전과 환경개선 활동도 꾀하고 있는 하바나는 녹색도시에서 녹색관광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당진시대·태안신문  공동취재단
※ 이 기사는 2019년도 충청남도 지역언론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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