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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하는 이화정 씨 (73세·신평면 거산리)
바느질로 살아온 한 평생 “삶의 상징”

가족 부양하기 위해 시작한 양장점
8년 전 딸 권유로 당진으로 이주
면천 진달래상회에서 작품 판매
박경미l승인2019.08.26 10:41l(12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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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세의 이화정 씨는 40여 년의 세월을 바늘과 실로 버텨왔다. 시작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였고, 그 삶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더 이상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한 그가 아직까지도 바느질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느질 한 땀의 시작

이화정 씨의 첫 바느질 한 땀은 그의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시작됐다.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던 이 씨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장이 돼야만 했다. 당시 서울의 한 육군본부에서 사무직으로 일했던 그는 얼마 안 되는 봉급으로 여섯 식구를 먹여 살렸다.

그러나 생계를 유지하고 동생들을 공부시키며 뒷바라지하기에는 너무나 빠듯한 살림이었다.
가장의 책임으로 이 씨는 직장을 정리하고 작은 가게를 얻었다. 양복점을 운영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이 씨는 양장점을 차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옷 짓는 법을 몰랐던 이 씨는 기술자를 두고 양장점을 운영하며, 어깨 너머로 옷 짓는 법을 배웠다.

그는 “아버지가 양복점을 운영해 양복과 양장에는 익숙했지만 실제로 옷을 만드는 방법은 몰랐다”며 “양장점을 운영하면서부터 실과 바늘을 들었다”고 말했다. 

 

생계수단이었던 바느질

동네마다 양장점, 양복점 한 군데는 꼭 있던 그 시절, 옷을 맞춰 입기 위해 찾은 손님들로 양장점이 붐비곤 했다. 그는 “여성들이 예쁜 옷을 맞춰 입고 즐거워할 때면 나도 기분이 좋았다”며 “새 맞춤옷을 입은 손님들에게 옷처럼 꼭 맞는 일들이 이뤄지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이 씨는 15년 간 양장점을 운영하면서 가족들을 부양했고, 그만의 가정도 꾸렸다. 그는 “양장점을 운영하면서 아이도 낳아 키웠다”며 “일이 바쁠 때면 아이를 등에 업고 손님을 맞이하는 일도 많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수제 양장이 기성복으로 대체됐다. 하루아침 문 닫는 양장점과 양복점은 늘어만 갔고 이 씨의 양장점도 피해갈 수 없었다. 새로운 일에 뛰어들어야 했던 이 씨는 홈패션으로 업종을 바꿨다. 그의 두 번째 땀의 시작이었다. 

홈패션을 시작한 이 씨는 시누이가 운영하던 토탈샵에 그가 만든 각종 패브릭 작품을 납품했다. 이는 당시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에게 기회가 됐다. 오랜 경력과 노하우, 꼼꼼한 솜씨를 가진 이 씨는 실력을 인정받아 큰 공장까지 차려 제품을 납품하게 됐다고. 

인생의 상징물

생계를 위해 시작했던 바느질은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40년 세월 동안 함께 했던 바느질은 언제나 그와 함께했다. 결혼해서 당진에 살고 있는 딸의 권유로 8년 전 당진에 내려올 때도 그는 바느질에 필요한 도구들은 빼놓지 않고 챙겨 내려왔다.  

신평면 거산리에 마련된 이 씨의 집 한 방은 오로지 그를 위한 공간으로 바느질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재봉틀 및 각종 원단과 실이 가득한 이곳에서 그는 매일 바느질에 매진하고 있다.

행복한 노년의 삶을 보내고 있는 이 씨에게 바느질은 더 이상 생계수단이 아니다. 그에게 바느질은 그의 삶 전체를 상징하는 의미가 됐다. 이 씨는 “먹고 살기 위해 바느질을 40여 년 간 해왔다”며 “이제는 나를 표현하는 나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고 전했다.

심미성에 실용성 더해

생계수단을 넘어 이 씨의 인생이 된 바느질로 그는 세 번째 땀을 짓는다. 최근 그는 딸 신은미 씨의 소개로 면천의 잡화점 진달래상회에 그가 만든 작품을 판매하고 있다. 

“딸이 면천의 책방을 오가면서 잡화점 진달래상회를 눈여겨봤어요. 딸이 내가 만든 물건들도 잡화점에 선보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죠. 집에서 바느질하며 만들었던 제품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돼 기뻐요.”

진달래상회에는 앞치마, 가방, 주머니, 스카프 등 이 씨가 만든 각종 바느질 제품들이 마련돼 있다. 70대인 그가 만들었지만 젊은 층의 구매 욕구를 자극할 만큼 젊은 감각의 제품들이다.

이 씨의 제품은 트랜디한 패턴과 색감의 원단을 사용했으며, 프랑스 자수를 더하기도 했다. 어느 작품은 스카프, 무릎덮개, 앞치마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순면으로 만들어 자연친화적이면서도 심미성과 실용성을 살렸다. 

그의 나이 73세에 세 번째 땀을 짓는 이 씨는 언제나 작은 소망을 담아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한다. 

“더 이상 바랄 게 뭐가 있겠어요. 건강하고 자식들이 화목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 옆에서 저는 바느질을 하고 있겠죠.”

 


박경미  pkm94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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