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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9.10.07 10:58
  • 호수 1275

[칼럼] 산책길에서
유은희 당진중앙성결교회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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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풀 잎새 그윽한 산길을 따라 깊은 상념에 젖어본다는 것은 마음 설레는 일이다. 

조붓한 산길…. 그 길은 엉겅퀴 시들고 도토리 나뒹굴어 낯설지 않은 길. 밥 광주리 머리에다 이고 밭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꼭 붙들고 따라 나서던 어린 날의 길. 그 길에는 언젠가 입김처럼 뿌옇게 서리는 추억이 있어 나를 기쁘게 한다. 때로는 그 입김이 앙상한 갈대 잎에 그렁그렁한 눈물로 맺히기도 하고 가을바람에 실려 빈 가슴을 한 바퀴 휘돌아 달아나기도 한다. 

누가 다투어 말하지 않아도 가을이면 으레 고향을 떠올리게 되고 그 가을 속에서 사색의 시간들을 마련해 보는지도 모른다. 

문득 버려진 가슴 속에 그립고 아쉬운 것들이 낙엽 되어 쌓이는 날이면 나는 오후의 안식처가 되는 나의 방을 비워두고 문 밖을 나선다. 

붉게 타들어가는 산허리쯤에 없어진 서너 채의 기와지붕…. 살랑거리는 마른 옥수수 잎과 빈 들녘을 바라보고 있는 무심한 허수아비…. 

마치 모진 세월을 인내한 어머니의 사랑과 같다고나 할까? 늦가을 햇살이 안개발처럼 부서지는 날이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긴장대로 감을 땄고 나는 그때마다 동심을 하나씩 똑똑 따서 광주리에 가득 담아냈다. 그것은 하늘에서 거두어들이는 또 하나의 결실. 

감을 딸 때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까치밥이라고 하시며 꼭대기에 매달린 몇 개의 감은 그대로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먹이가 귀할 때 까치가 와서 쪼아 먹고 간다는 것이다. 

어느 집 장독 곁에 앙상히 매달려 있는 감이라도 발견한다면 까치는 얼마나 고마워 할 것인가. 예로부터 까치와 사람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처럼 감을 매달아 두는 것은 늘 반가운 소식이 끊이지 않길 바랐던 옛 사람들의 소박한 기원이자 하찮은 미물에게까지도 선덕을 베풀던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도 반대급부도 요구하지 않았던 그들의 정감어린 사랑. 우리 속담에 ‘감나무 밑에 누워도 미사리를 대라’는 말이 있다. 의당 자기에게 돌아올 이익이 있으면 서둘러 노력해야 된다는 말이다. 

혹 이말 속에 현대인의 모습이 투영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미 오래 전에 겸손한 미덕을 잃어버린 우리들…. 너무나 상반된 이 두 가지 말을 생각하며 감나무 옆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자꾸만 자꾸만 어린 시절의 장독 곁으로 뒷걸음질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것이 그리워지는 지금 지고했던 어머님과 아버지의 사랑이 지금쯤 어느 담벼락에 기대어 고향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감나무에 매달려 만추의 노을 속에 주홍빛 그림움을 익혀내고 있다. 감나무에 빈가지가 있을까 빈가지가 있다면 내 지금 그리운 생각들을 그 가지 끝에 매달아 노랗게 익혀두고 오래오래 바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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