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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우강면 부장리 전경수 이장
“좌절하지 않았기에 오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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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혈액암 발견…올해 완치 판정
등산·난타 등 다양한 취미활동 즐겨

“침대 하나에 세면대 하나, 커텐으로 샤워 공간을 만든 단촐한 공간에서 치료를 받았어요. 밥은 물론 물 한 모금도 넘기지 못했고, 잠도 못 잤어요. 너무 아프고 제정신이 아니니까 욕이 나올 정도였죠. 간호사에게 ‘내일 죽어도 후회 없으니까 집에 가겠다’고 했어요.”

암병 등반 취미…우강면 토박이

전경수 이장은 우강면 부장리에서 태어난 토박이다. 전 이장은  폐교된 부장국민학교를 다니다 상경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겪으라는 부모님의 뜻이었다. 그러나 서울살이는 설움 그 자체였다. 몸을 의탁한 고모네 식구 9명에 사촌형과 막내고모까지 학생들만 12명이 넘는 대식구들이 한 집에서 생활했다. 전 이장은 “어느 날은 도시락에 달걀후라이가 있었다”며 “알고 보니 고모 아들과 도시락이 바뀐 것이었고, 그동안 고모는 본인 자녀에게만 도시락에 달걀후라이를 넣어준 것이었다”고 말했다.

서러운 타향살이였지만 전 이장은 열심히 살아갔다. 중학생 때는 소년단, 고등학생 때는 연장대 등 학창시절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하며 지역에 봉사하고, 리더로 또래 학생들을 이끌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가전제품 모형을 제작하는 회사에서 일했고, 이따금 고향에 내려가 농사일을 도왔다. 30대 중반을 넘어설 무렵부터 점점 두가지 일을 병행하기 어려워져, 결국 고향을 다시 찾은 그는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20년의 세월 동안 농부로 살아갔다.

4기초 혈액암 발견

고된 농사일로 몸이 축난 것일까. 어느 날 뻐근하고 결린 몸 상태에 하루는 침을 맞았다. 살성이 좋아 하루 만에도 상처가 금방 낫곤 했는데 이날 따라 침 맞은 부위에서 계속 고름이 생겼다. 이상하게 여겨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했고, 엑스레이 사진 속 그의 몸에는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암벽과 빙벽 등반이 취미일 정도로 힘이 넘치고 건강했던 그에게 암이 발견된 것이다. 그의 나이 55세였다.

“병원에서 검사를 한 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병명을 안 알려주더군요. 병원에서도 어떤 암인지 파악을 못했던 거죠. 그러다 한 의사가 “사람 잡을 일 있냐”며 “빨리 혈액내과로 내려보내라”고 했어요. 다시 검사하니 혈액암 3기말 4기초였습니다. 그때 의사는 내게 길면 6개월, 빠르면 3개월 살 수 있다고 했죠.”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오히려 전 이장은 담담했다. 지나온 삶에 후회가 없었다는 그는 남은 생은 하늘의 뜻이라 여겼다. 그는 “하고 싶은 것을 해오면서 살았기에 큰 후회는 없었다”면서 “죽을 날이 얼마 없음을 알았지만 ‘더 살고 싶다고 살아지는 게 아니니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

치료 과정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그는 독일 제약회사의 임상실험에 참가하며 치료를 이어갔다. 전 이장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여서 이왕 죽을거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며 “나 하나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가슴에 의료기기를 꽂고 호스를 연결해 심장으로 약을 투약했다. 일주일 항암 치료를 받으면 이주일은 집에서 보내야 했다. 일반 혈관에 맞거나 계속 약을 투약하면 혈관이 파열될 정도로 독한 약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그의 가슴에는 당시의 고통이 흉터로 남아있다.

항암치료는 4차, 5차, 6차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선 골수이식과 혈액투석도 이뤄졌다. 혈액투석 과정에서는 체온조절이 쉽지 않아, 체온이 떨어지고 심한 오한이 들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고.

특히나 전 이장을 가장 힘들게 한 치료는 무균실 입원치료였다. 몸에 있는 균을 다 죽여 병균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만드는 치료다. 침대와 세면대가 있고 커텐으로 샤워 공간을 나눈 좁은 공간에서 그는 3주 동안 있었다. 소독약 냄새로 머리는 아프고, 독한 약으로 물 한 모금도 넘기지 못하고 잠도 잘 수 없었다. 좁은 공간에 갇혀있다는 것과 극심한 통증은 그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갔다. 그는 당장 내일 죽어도 후회 없으니 집에 가겠다고 말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난타·기타 등 취미활동 즐겨

그러나 전 이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6개월간의 치료 끝에 그는 그해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퇴원했다. 아직까지도 퇴원 날짜를 잊지 못한다는 전 이장은 “퇴원 초기에는 한 발자국도 못 옮기고 생수 한 병도 들지 못할 정도로 몸에 힘이 없었다”며 “5개월쯤 지나자 서서히 몸에 힘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키워나갔다”고 말했다. 아령, 다리운동, 등산 등을 하며 체력을 기르고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지속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몸 상태를 살핀 전 이장은 드디어 올해 1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전 이장은 “의사에게서 판정을 듣는 순간 너무나 기뻤다”며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왕 더 살게 됐다면 건강하고, 아프지 말고 더욱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그는 등산과 암벽 등반 외에도 검도와 난타 등 새로운 취미활동을 시작했다. 검도는 1년 넘게 도장을 다니며 배웠고, 난타는 주민자치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고 있다. 수강생들 사이에서 청일점인 그는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지난달 신평문화스포츠센터 일원에서 열린 가을콘서트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작년부터는 마을 이장을 맡아 바쁜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기타까지 흥미를 붙였다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저처럼 다른 사람들도 병에 걸리더라도 좌절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좌절하지 않는다면 암도 이길 수 있습니다.”

>> 전경수 이장은

-1954년 우강면 부장리 출생
-서울 공덕국민학교·마포중학교·
 마포고등학교 졸업
-서울 대한산악연맹 회원
-취미활동: 난타, 기타, 암벽 등반, 등산
-현 우강면 부장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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