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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9.11.25 11:24
  • 호수 1282

“생명력 있는 농촌을 소망한다” - WTO 개도국 지위 포기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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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현 전 충남도의회 농수산경제위원장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을 거닐다 보면 올 한 해 여러 번의 태풍에도 질긴 생명력을 보였던 쌀과 그 쌀을 지키기 위해 무척이나 애썼던 나와 농민들의 노고를 마주하게 된다. 2019년, 농사로는 무척이나 고된 한 해로 기억될 듯싶다.

돌아보면 수십 년을 우강 들녘에서 농민으로 아이들을 무탈하게 키우며 가족을 돌보았고 농민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앞장선 유의미한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 세월 동안 도시에 도시민에 한없이 품을 내줄 것만 같았던 우리네 농업과 농촌은 이제 그 생명을 다해 가고 있어 마음이 저며 온다.

농가소득은 20년 전과 같고 농업 명목 소득은 30% 감소했다.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28%에 불과하며, 농협미래연구소는 2025년 농업소득 미래 전망치를 지금보다 낮은 1141만 원으로 예측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국가고용정보원은 읍면동 지역 40%가 향후 30년 안에 사라진다고 전망했고, 농가경영주 평균 연령은 68세이다. 농지의 부재지주 소유는 52%에 달하며, 농민 중 60%는 소작농이 되었고 식량자급률은 21%대로 떨어졌다.

농지가 사라지고 농민이 떠나가고, 가장 기초적인 인간의 기본권인 먹거리 기본권마저 지켜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개방 농정 성적표가 낙제를 넘어 회생 불가의 길로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할데 정부는 우리 농업의 최소한 안전장치인 WTO 개도국 지위마저 포기하고 말았다. 우리 농업을 버리겠다는 것인지. 우리 농촌을 소멸시키겠다는 것인지. 우리 농민을 사지로 몰아넣겠다는 것인지. 이제 농업농촌농민의 미래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태풍 앞 촛불처럼 위태롭기 그지없는 상황을 직면하게 되었다.

1995년 WTO 출범 이후 농업 개방으로 인해 이 땅의 농민들은 물론 전 세계 수 많은 농민들이 다국적기업 농산물로 농토를 잃었고 목숨을 잃었다. 나는 2003년 故 이경해 열사가 “WTO가 우리 농민들을 죽인다”라고 외치며 자결한 멕시코 칸쿤에서 그와 함께 “DOWN! DOWN! WTO!”를 외쳤고, 2005년 홍콩에서 개최되었던 WTO 각료회의 저지를 위한 한국농민원정투쟁단에 충남의 많은 농민들과 함께 참석을 하였다.

전 세계 많은 농민의 절절한 바램과 실천으로 WTO 칸쿤과 홍콩 각료회의는 결국 저지되었다. 나는 당시 홍콩에서 만났던 홍콩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홍콩에서 집회를 해 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한국 농민들의 삼보일배 등 평화롭지만 단결된 WTO 항의 시위에 많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작금의 홍콩 상황을 보며 당시 만났던 홍콩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떠오른다.

너무나 많은 농민들의 피땀과 목숨으로 지켰던 WTO 개도국 지위가 포기되었기에 어떠한 감언이설과 대책으로는 위로가 될 수 없다. 나의 삶 자체가 개방농정 반대, 농업의 세계화 반대였기에 좌절을 넘어 비통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나는 소망한다. 농촌 곳곳에 다시금 WTO 반대 깃발이 나부끼고 이른 아침 여의도로 광화문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 농민들을. 또한 땀 흘렸던 들녘을 보며 쌀값 걱정보다 넉넉함을 이야기할 수 있고 많은 아이가 동네 어르신들과 어울려 사는 생명력 넘치는 농촌을.
물론 이런 소망은 쉽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필요한 소망이라면 우리는 해야만 한다. 간절히 원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간절히 소망을 주위 농민들과 나눠야 한다.

이제 2020년이다. 새로운 희망을 준비해야 한다. 희망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내년에도 농사짓고 싶다. 10년 후에도 아니 5년 후에도 농사짓고 싶다는 희망을 우리 당진 농민들과 계속 품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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