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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남 목사님을 보내며

최종길 당진시대 편집국장 최종길l승인2019.12.07 13:49l(12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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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의 울타리 자임
이명남 목사님과의 인연은 1990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는 1989년 고향에 내려와 월간지 <읍내리소식(당진사랑 전신)>을 창간하면서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읍내리소식> 편집진은 첫 문화행사로 그 당시 ‘접시꽃당신’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도종환(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시인을 초청했다.

당시 전교조 당진지회(지회장 이인호)와 공동으로 준비한 강연회였지만 군사정권 하에서 강연회 장소를 섭외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 목사님이 기꺼이 당진장로교회를 강연회 장소로 내어주며 행사를 적극 도와주셨다. 이미 이 목사님은 군사정권에 맞서 싸우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야인사였는데, 지역에서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이 목사님은 지역 일도 마다하지 않고 앞장서주셨다. 전교조 교사가 연행됐을 때, 적벽돌 공장입주 반대시위를 하다 신평면 금천리 주민이 연행됐을 때에도 이명남 목사님은 한걸음에 달려와 이들이 풀려날 수 있게 도왔다.

2000년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낙선운동이 전국적으로 불붙었을 때도 이 목사님은 전국과 지역을 오가며 활동하셨다. 당진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거리에 나섰을 때도 이 목사님은 그들과 함께했다. 이때 맺었던 김대희 전 당진군재향군인회장과의 인연은 보수단체에서만 활동했던 김 회장이 시민단체 활동을 하게 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지역사회 일원으로 참여
이명남 목사님은 지역의 첫 환경운동인 중부권특정폐기물 반대투쟁과 석문공단 석유화학단지 입주반대 투쟁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1980년 5월 당진장로교회에 부임한 이 목사님은 우리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사명 뿐만 아니라 지역 일에 대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고민하고 참여하는 일꾼이었다. 당시 문턱이 높은 은행을 대신해 서민들을 돕고자 당진새마을금고를 설립, 현재 자산 800억 원대의 지역금고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초기의 설립정신이 사라지고 일반 은행과 별반 다르지 않게 운영되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했다. 이 목사님은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한국사회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다고 판단하면서 지방자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진시승격추진위원장을 맡아 2011년 당진시승격에 기여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지역 시민단체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후 추진위원장을 맡은 당진평화의소녀상 건립과 당진문화재단 이사장 취임에 일부 시민단체 임원들이 반대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인권과 민주주의 회복운동
청년 같은 삶을 살았던 이명남 목사님은 2019년 11월 29일, 80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우리는 가끔 한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 그 사람의 삶을 온전히 보지 못하고 한 부분만 확대해서 주관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 목사님에 대해서도 한국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기여한 공로를 외면한 채 삶의 일부와 정파적 관점으로만 평가하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상임의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장, 민주주의민족통일 대전충남연합 상임의장은 1980년대 암울했던 군사정권 시절에 이 땅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불꽃처럼 살아온 이 목사님만이 가질 수 있는 훈장이다.

이명남 목사님을 추억하며
이 목사님은 천성적으로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셨다. 늘 주위에는 크고 작은 일들을 부탁하는 사람들도 북적였다. 민종기 전 군수가 재판정에 목사님을 증인으로 신청했을 때도,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는 사람을 어찌 외면하냐” 말씀하시면서 다녀오셨다.

최근에는 충남문화재단 이사장으로 부임 후 첫 월급 타시고는 “내겐 너무 많다”하시며 치료비를 제외하고는 곳곳에 기부하셨다.

이 목사님은 서로 정치적 이념은 달랐지만, 담도암으로 먼저 가신 이병로 전 한국자유총연맹 당진시지회 사무국장을 그리워했다. “이 국장처럼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한다”면서. 오늘 이 목사님이 계신 대호지를 다녀오면서 어쩌면 두 분이 환한 얼굴로 다시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목사님은 당진에서 카페가 생겨나기 전에도 하루에 커피를 10잔 가까이 마시던 커피 마니아였다. 지금도 문득 “커피 한 잔 하세”하고 전화가 올 것만 같다.


최종길  cjgil19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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