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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9.12.13 20:19
  • 호수 1285

[기고] 향토문화유적 탐방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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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부 당진문화원 대의원/당진시 행정동우회 부회장

단풍이 아름답던 가을과는 이별하고, 몸을 움츠리게 하는 겨울과는 만남을 준비해야 할 때, 어느덧 시간은 또 한 달을 보내려고 하고 있다. 밀려오는 파도를 저항할 수 없듯이 거대한 시간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늦가을 날에, 당진문화원에서 실시하는 향토문화유적탐방에 참여하였다. 9시 30분에 당진문예의 전당을 출발한 일행 30명은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경기도 평택시로 향했다.

차내에서 당진문화원장님은 인사 말씀에서 2019년 제5차 향토문화유적탐방에 대한 자세한 경위를 설명하셨고 이어 사무국장께서 오늘의 일정을 상세히 소개하였다. 차장 밖에는 시리도록 차고 푸른 늦가을 하늘, 끝도 없이 펼쳐진 넓은 들판 논바닥에는 한결같이 소먹이인 흰 랩 뭉치가 널려 있어 황량하기만 하였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던 낭만주의 사상가 루소는 그의 문제작 <에밀>처럼 여행은 인간을 겸허하게 만들었다.

어느덧 버스는 한 시간 여 만에 우리를 첫 번째 탐방지인 평택시 진위면에 있는 삼봉 정도전 선생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삼봉 기념관에 도착하였다.

일행은 삼봉기념관에서 선 관리소장의 재치있는 설명을 들으며 각종 유물을 살펴보았다. 삼봉(정도전) 선생은 조선 건국 초기에 한양 도읍의 궁궐과 종묘 건축을 주도해서 완성하였고, 경복궁 등 각 전당을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왕산, 백악산 등 4개의 산을 실측해서 도성의 범위를 확정하는 등 그 공이 지대하여 1395년 태조 4년에 유종공종(儒宗功宗)이라는 어필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한양도성 설계도 관람을 끝으로 삼봉 전도전 선생의 위패를 봉안한 문헌사를 찾아 참배를 올린 뒤, 기념관을 뒤로했다.

점심때가 되어 예약 되어 있는 최네집 부대찌개로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평택시 도일동에 있는 원균장군 묘역과 기념관을 찾았다. 평택종중 원 회장님의 안내를 받으며 원균장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원균(1540~1597) 장군의 자는 평중으로 조선 선조 때의 무신이다.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을 거쳐 조산만호 부령부사를 지냈다.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로서 처음 옥포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왜선 30여척을 무찔렀다고 한다.

그 후 합포해전, 적진포해전 등 여러 차례에 걸친 크고 작은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선조 30년 1597년 칠천량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선조 36년(1603)에 권율, 이순신과 함께 선무 1등 공신에 추록 되었다고 한다. 원균 장군 묘역 안에는 석등이 있고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려주는 망주석과 무인석이 있었다.

원릉군 기념관에는 장군의 상애와 가계, 원균선무공신교서, 치제문, 판옥선 등 당시의 전함과 병장기, 전승기록 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장군의 생애를 영상을 통해 자세히 알 수가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탐방지인 수도사 깨달음 체험관으로 향했다. 수도사 주지 스님으로부터 안내를 받아 원효대사깨달음체험관을 관람했다.

수도사는 삼국유사에 따르면 문무왕 1년(661년)에 원효대사께서 의상대사와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던 중 수도사 부군 토굴에서 해골바가지 물을 드시고, 문득 깨달음을 얻은 천년고찰 원효대사 오도성지였다. 경내 1,056㎡에는 「일체유심조」를 주제로 한 첨단 전시실과 토굴체험실, 오도체험실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체험관 곳곳에는 원효대사의 흔적을 다양한 기록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이렇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추억 깊은 향토문학 유적탐방을 무사히 마치고 귀갓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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