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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24 11:31
  • 호수 1291

76년 만에 찾은 아버지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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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강제징용 문서 확인
20살 때 전쟁터로 떠난 남편 기록…구순 넘어 찾아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당진시지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나기복 씨가 76년 만에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찾았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에 강제징용된 피해자로, 최근 국가기록원으로부터 확인받았다. 

결혼 직후 전쟁터로 끌려가

나기복 씨의 어머니 이순남(95) 씨와 아버지 故 나찬옥 씨는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출신으로, 광복을 맞이하기 1년 전, 1944년에 결혼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었던 당시 어른들은 어린 딸이 행여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을까 걱정해 일찍 혼사를 치렀다. 

그러나 역사의 소용돌이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이순남 여사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진 않았지만, 남편인 나찬옥 씨가 결혼한 지 불과 수개월 만에 일본군으로 강제징용됐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 겨우 23살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1년 만에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우리나라도 광복을 맞이했다. 노심초사 기다렸던 남편은 1945년 8월 23일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순남 여사는 “그 어린 나이에 전장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얼마나 걱정이 많았었는지 모른다”고 회상했다. 

나찬옥 씨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그리 오래 살진 못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 5년 뒤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그로부터 또다시 5년이 지난 1955년, 나 씨는 고단했던 젊은 시절을 뒤로하고 33살의 젊은 나이에 전쟁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기복 씨는 고작 3살이었다. 

76년 전 일…아직도 눈물 나

평생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지냈던 나기복 씨는 몇 년 전 구순을 넘긴 어머니께 이러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그러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관심 갖게 되면서 국가기록원에 아버지의 강제징용 기록을 문의했다. 

국가기록원은 故 나찬옥 씨의 강제징용 기록을 확인하고 지난 15일 나기복 씨에게 관련 자료를 보냈다. 관련 기록에는 아버지의 고향 여미리 주소와 아내의 이름 ‘순남’, 그리고 ‘찬옥’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만 당시 창씨로 인해 성은 ‘나’ 대신 ‘오오타(太田)’로 기록돼 있다. 

어머니 이순남 여사는 가슴에 묻어두고 살았던 남편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아들이 아버지의 기록을 찾아줘서 참으로 고맙다”며 “76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나기복 씨 또한 “너무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는데 76년 전 아버지의 흔적을 찾은 뒤 어머니와 함께 울었다”며 “설날에 성묘하며 아버지 산소에 이 기록을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라의 주권을 빼앗겨 발생한 이러한 비극이 또다시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며 “자유와 평화, 안보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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