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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못한 심정도

타지못한 심정도

'타이타닉'호처럼 많은 승객을 태운 여객선이 망망대해에서 침몰하는 중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한된 구명정으로 구조할 수 있는 인원은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것을 '구명정 상황'이라고 한다. 서구의 어느 생태학자는 저서를 통하여 이런 사태가 일어났을 경우 순간적으로 네가지 방법 중에서 하나가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첫째는 무리를 해서라도 인도주의적으로 모두 태우려고 노력한다. 인간의 생명은 누구나 평등하므로 똑같이 기회를 주자는 입장에서는 그럴듯하지만 구명정이 뒤집혀 모두가 죽게 되는 결과를 맞게 된다.
그 다음 방법은 나이가 적은 사람, 임신 가능한 여성을 우선으로 태울 수 있는 순간까지 태운다. 그러나 인간의 기본적 심성으로 볼 때 절박한 현실에서 질서정연한 구조는 기대할 수 없다.
또 한가지는 양심에 호소한다. 객관적으로 더 생존할 가치가 있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양보와 희생의 선처를 바라는 길이다. 그러나 저자는 비양심적인 사람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가장 어리석은 방법이라고 지적하며 결국 경쟁을 인정해야 된다고 결론을 맺는다.
힘이 세고 재빠른 사람이 먼저 올라탄 후 그 사람들이 선호하거나 연관되는 사람을, 가라앉지 않을 때까지 태워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먼저 타서 기득권을 쥔 사람들이 전복위험 이상은 태우지 않으려는 집단적 이기주의에 맡기는 것이 가장 많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지만 명암이 엇갈린 양쪽의 심정을 어떻게 거두느냐가 문제로 남는다.
양심과 감정과 이해득실이 뒤엉켜진 이러한 구명정 현상이 우리지역에서도 불과 몇년 사이에 끊이질 않았다. 공원묘지, 쓰레기장 등 크고 작은 사안을 비롯해 최근 터미널과 문예회관 건립지가 확정되기까지 숱한 문제들이 불거져 나왔는데 서로가 물고 늘어지는 주장의 홍수로 오랫동안 주춤거렸다. 너무 느리적거렸다. 과거에는 큰 것이 작은 것을 흡수했지만 이제는 빠른 것이 굼뜬 것을 잡아 먹는다.
우리는 구명정에 올라 탄 사람을 나쁘게 볼 것도 없고 못탄 사람들을 열등하다고 결론지어서도 안된다. 햇빛을 받는 물체가 있다면 그 물체 뒤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생기는데 그런 것을 어떻게 빨리 처리하느냐에 따라 성숙의 정도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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