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도 지나기 전에 빙점에 가까운 변화를 보니 올 겨울엔 어지간하려나 봅니다. 사람사는 세상 시끌법석 했으니 하늘인들 가만있을라구요. 그런데 사람은 느낌의 동물이라던데 여길 잘 빠져 나가면 웬지 뭔가 될 것 같은 감도 잡힙니다. 올해 봄, 여름은요 안전한 주식투자·푼돈으로 일억 만드는 법을 공부하느라 되도 개도 야단들이었어요. 그냥 꽃꽂이·교양강좌는 삼식이 장난이랍니다. 끼니 이어 먹고 살만하면 정서생각도 할만한데 이것 역시도 애들한테 밤하늘 선 긋는 별모습을 안보여 주었습니다. 이것한테 떨어져 나가면 굶어 죽을까봐 쪼개지기 전에 머리먹물 진하게 들이느라고 그랬습니다. 아무리 제맘의 결정없이 선택없이 이 세상에 왔었지만 첫 학교 콧수건 뗀 뒤에는 수없는 결정의 연속이었습니다. 끝내는 누구나 제 결정없이 돌아갈테지만요. 정말로 어지간히 되는 일 안되는 일 억지 부리며 살고 있습니다. 각본에 따라간 연극놀이가 어찌 한 두번인가요. 해온 일 깨끗한 것이 얼마나 됩니까. 너무나도 스리슬쩍 살아온 나날입니다. 어머님, 어머님! 어떻게 살아야 좋은 거예요. 어떻게 살아야 향 나는지요. 정녕 한편의 드라마로 살 순 없겠지만 땡빚으로 된다면 그리할 겁니다. 이 가을에, 지난 봄 황사가 그렇게도 짜증났었고 하절갈 구분없는 몹쓸 장마 속에 불행만 남는 기억이었고 네계절 중 두계절이 고스란히 남았는데도 갈색의 가을풍경이 또 한해를 다 보낸 듯 합니다. 어머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살지만 날이 갈수록 이유없이 반가운 사람은 점점 더 잃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하는 일 뼈 박혀서 그런걸까요. 이것이 못나서 그런 걸까요. 세상은 들려주신 대로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알려주신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 좋아서 하는 일 까치발 안간힘 다 쓰다가 때다 싶으면 훌훌 털 것이고 부자차림 엇거지로 뒹굴겠지요. 이 가을 앞산 돌밭에 흐르는 물은 번쩍거리는 칼, 맑고 깨끗한 안색, 해바라기 눈매로 보는 거울에 비친 그림자입니다. 헌데 어머님, 품안의 자식이란 말은 왜 생겼을까요. 제 잘나 앞만 가리는 이것. 차라리 맘대신 몸이라도 아팠으면 후련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