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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페럴림픽 국가대표에 도전합니다!”
박상현 파라 아이스하키 전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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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 교통사고로 얻은 장애…스포츠로 극복
아이스슬레지하키 14년 차…국가대표로 활약

젊은 시절, 한 사람을 덮친 불의의 사고는 그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신체적 장애는 그의 삶에서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는 운동으로 시련을 극복했고, 파라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2010 밴쿠버, 2014 소치 페럴림픽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2년 뒤 열릴 2022 베이징 페럴림픽 출전을 목표로 다시금 국가대표에 도전한다.

축구선수로 활약하기도

신평면에서 나고 자란 박상현(48) 씨의 어린 시절은 여느 또래와 다르지 않았다. 활동성이 뛰어났던 그는 신평고 축구선수로 활약하며 프로선수로 활동했을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군 생활을 마친 뒤 지역의 한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년 반 정도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자신의 삶에는 큰 굴곡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불의의 교통사고

그러나 박 씨의 그런 생각은 얼마 가지 못했다. 그의 나이 26살에 일생일대의 사고를 겪었다. 달려오는 차를 피하지 못하고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밤 12시에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다음날 아침 7시에 발견된 그는 하지지체장애를 얻었다.

박 씨는 “그 교통사고가 없었다면 장애를 얻지 않았을 것”이라며 “내가 장애인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술하며 병원에서 1년간 회복기를 가졌다. 퇴원한 박 씨를 친구들이 5년 동안 업고 다녔다. 장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던 그는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무지했다. 서 있을 수 없으니 집에 있으면 온종일 누워있거나 한 자세로 계속 앉아 있었다. 심지어 하루 종일 누워 있어 등에 욕창이 생기기도 했다.

운동으로 장애 극복

박 씨는 장애로 인해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슬픔에 오랜 시간 매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운동을 통해 장애로 인한 슬럼프를 극복하고자 했던 그는 탁구를 시작했다. 운동을 좋아했기에 빠르게 적응했고, 이후엔 휠체어농구에 도전했다. 그러면서 장애인하키인 파라 아이스하키를 접했다.

파라 아이스하키는 아이스하키와 같다. 스케이트 대신 양날이 달린 썰매를 탄 채로, 양손에 스틱을 들고 작은 원반 모양의 퍽(아이스하키용 공)을 이리저리 움직여 골대에 넣는 스포츠다. 빠른 속도와 격렬한 몸싸움으로 장애인 동계올림픽의 꽃으로 불린다. 그는 “거친 운동이 성향에 맞았다”며 “금세 파라 아이스하키에 매력을 느꼈다”고 전했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들다

당시 지인의 권유로 경기도 파라 아이스하키 클럽인 ‘레드불스’에서 활동했다. 하키의 재미에 푹 빠졌던 그는 당진에서 경기도를 오가며 운동했고, 그러다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당시 파라 아이스하키팀은 3개뿐이었는데, 클럽팀 레드불스와 연세이글스, 그리고 2006년 창단된 강원도청 실업팀이 유일했다. 국가대표 17명 중 5명을 클럽 팀에서 선발했는데, 박 씨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든 것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지만 국가대표 활동은 녹록지 않았다. 비인기 종목인데다 장애인체육으로 사람들의 관심은 저조했고, 환경도 열악했다. 당시 이천에 선수촌이 있었지만 아이스링크장이 없어 춘천의 빙상장에서 연습을 했다. 하지만 피겨 등 다른 스포츠 단체들의 사용시간이 있다 보니 연습일정이 밀리는 일도 일쑤였고, 모텔을 숙소로 이용하며 어렵게 훈련했다.

감격의 애국가

힘들게 훈련했기에 대회에서 애국가가 들려오면 가슴이 더 찡했단다. 국가대표팀은 2008년 미국 세계선수권대회 B-POOL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A-POOL로 올라갔다. 2009년 체코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대회에서는 A-POOL 7위로 2010밴쿠버장애인동계올림픽 본선진출권을 따냈다. 첫 패럴림픽 출전에서 그는 세계의 벽을 실감했다. 그를 비롯해 선수들이 부상을 입으며 세계 6위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201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국가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파라 아이스하키는 체력소모도 크고 몸싸움을 하니까 힘든 스포츠에요. 훈련하다, 경기를 뛰다 부상도 여러 차례 입어요. 저도 운동하다 손가락에 금이 가기도 했는데, 지금도 후유증이 있어요. 스틱을 오래 쥐고 있으면 엄지손가락이 부어 오르죠. 그래도 아픔을 참고 경기를 뛰는 거죠. 어렵게 운동하다 시합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국가대표 재도전!”

국가대표 선수로 뛰면서 그는 2010 밴쿠버, 2014 소치 페럴림픽에 출전했다. 그러나 2018 평창 동계 페럴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박 씨는 다시금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키 장비를 챙기며 연습에 나선다.

“오는 6월에 국가대표 선발전이 있어요. 선발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다시 국가대표가 돼야죠. 이루지 못한 금메달에 다시 도전할 겁니다!”

>> 박상현 선수는
-1973년 신평면 신당리 출생
-신평초·중·고 졸업
- 경기 레드불스 클럽 활동
- 2010, 2014 페럴림픽 파라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 현 아산스마트라이노 슬레이지하키(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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