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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바보

그리운 바보

70년대에 한창 유행한 흘러간 옛노래 중에 '바보같은 사나이'란 가요가 있다. 지극정성으로 한 여인을 사랑했지만 맺지 못할 운명 속에 못잊고 가슴만 태우면서 자신을 바보에 비유한 노랫말이 그 내용이다.
지금의 정서라면 사실 바보같이 보일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든 손해나서는 안되고 감성과 정서보다는 능력이 우선하여 절대로 뒤처지지 않아야만 사람 대접받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요즘의 잣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보라는 의미는 지능지수가 모자란다는 뜻이 물론 아니다. 되바라지지 않고 상업주의에 덜 물이 든 인정과 서민적 의리의 처분만 바라는 차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현명한 처세인데도 제값을 못받는 경우가 있다. 불평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자신은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도 남의 얘기는 성실하게 들어주는 사람들이다. 불평·불만은 거의 선천적이라 할만큼 어려서부터 체질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아무리 개선의 혜택을 주어도 금방 또 불평한다. 이례적으로 필요악인 경우는 있지만 이들에게는 분명 불평없는 다수가 바보같이 보일 것이다.
또한 남의 얘기는 건상으로 흘려버리고 본인 스스로는 장황하게 철학강의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입놀림을 잘하는 사람보다 부지런하게 말없이 손놀림하는 사람에게 떡 한개 더 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어느 단체, 어느 지역사회이건 항상 열명에 두세명의 바보들이 있다. 나머지 8할은 태도가 어정쩡한 갈대파이거나 무조건 반대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청개구리파이다. 하지만 일이 되어가는 원동력은 항상 바보들의 행진으로 판가름나게 마련이고 일이 지연되고 걸림이 되어 판을 깨는 것은 꼭 청개구리들의 난동으로부터 이루어진다.
그런데 어쩌랴. 신은 분명 약삭 빠르지 않은 바보들에게 승리를 자주 안겨준다. 지난 외환위기 속에서는 평소에 새알멜빵 걸머지던 사람은 예서 제서 외면당하고 바보들이 대접받았다.
요즘 널뛰기 하는 주식판에서도, 예측불허의 논밭에서도 밤낮 말없이 땀흘리고 남의 얘기 신경써서 잘알아듣는 바보들이 일을 내고 있다. 요즘 들끓고 있는 정치의 세계에서도 그렇게 되리라 믿고 싶다. 그것이 우리들 모두가 바라고 있는 속마음이다.
바보가 그립다. 행동으로 감동을 주는 진정한 바보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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