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끝난 후 이념교육을 해야 하는 중·고등 윤리교사들의 고민이 많아졌다. 늑대의 탈을 그려가며 적대감정을 부추기던 시절은 오래된 얘기라고 쳐도 분명히 6.15 공동선언 이후의 너무 급격한 변화에 갈피를 못잡는 것은 확실하다. 그동안 체제 대결구도의 이념교육에서 갑자기 완전한 화해무드의 분위기로 접근해야 되겠는데 도대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하는 잣대를 정부에서 조차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겐 일시성이 아닌 언제나 객관적으로대처할 수 있도록 포괄적인 사고방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어느 한쪽도 제도나 의식에서 내면적으로는 전혀 변한게 없다. 저쪽은 한정된 범위에서 풀어주는 배려에 한정되어 있고 이쪽은 물량공세와 선심으로 일관한다. 한민족, 한겨레가 함께 합치고 통일해야 된다는 어쩌면 당연한 명제로 허울을 만들면서도 현실에 마주친 각기 다른 목적으로 서로의 필요에 의해 살얼음판에서 손을 잡고 있는 상태일 뿐이다. 이러한 사안들을 직시하게 하고 그대로의 현상을 냉철히 알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념교육이다. 수천년 역사를 훑어 볼 때 이념은 백태이나 기본진리는 항상 하나일 뿐이다. 창공위의 태양은 홀로 찬란히 빛나지만 그 밑을 지나는 구름의 형태에 따라 땅위의 모든 여건들이 달라지는 것이다. 가벼운 양떼구름으로 맨하늘보다 운치를 더해줄 때도 있고 안개구름으로 아침 한나절을 자욱하게 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 어두운 먹구름이 몇날 몇일동안 비바람을 몰아치게 하면 강둑이 무너지고 물바다의 아비규환이 된다. 그러나 구름이 벗겨지면 또다시 세상은 언제 그랬느냐는 모습이 된다. 그리고 여전히 태양은 빛난다. 그런데 홍수가 끝나고 정적을 되찾으면 풍수해의 상처를 복구하고 치유해야 한다. 아무리 화해의 시대가 되었다 해도 아웅산, 대한항공, 학살, 강제납치, 입이 찢겨죽은 이승복을 잊지 않으면서 가슴 뚫려 피눈물을 흘리며 바라보는 수많은 원한서린 이들의 상처를 아물도록 하는 것이 순서이다. 너무 떠들지 말아야 한다. 반세기 이상 우리를 괴롭히던 냉전의 이념도 이젠 끝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절의 편향성 시각으로 보는 관행의 터널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역사와 이념의 흐름은 결코 직선으로만 가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