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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동네 한 바퀴] 송악읍 기지시리
“니나노집에서 패가망신한 사람 많았지”

큰 장이 섰던 기지시…지금은 아파트·상가 빼곡
윤년 3월 초 난장이 벌어졌던 기지시줄다리기
임아연l승인2020.03.20 19:45l(12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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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당진은 도시화·산업화로 인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역사와 추억이 담긴 옛 당진의 모습은 점차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당진시대>에서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담긴 동네(마을)의 모습을 전하고자 한다.

대전시, 천안시, 그리고 기지시 몰라?”

당진을 처음 방문하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기지시를 보고 당진시 안에 기지‘시(市)’가 있는 거냐며 의아해한다. 이 때문인지 기지시리 주민들끼리 하는 싱거운 농담이 옛날부터 있었다. “대전시, 천안시, 그리고 기지시 몰라?”
없는 것이 없던 기지시장

지금은 빼곡하게 들어선 아파트단지와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 때문에 옛 모습을 거의 상상할 수 없지만,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옛 장옥 인근은 꼬불꼬불 골목마다 재미난 옛 추억들이 숨어 있다.

“현재 도연다방은 박씨네주점이었고, 천진식당은 큰상회, 송악PC방 건물은 양조장, 중고전자는 서울옥, 남부집수리센터는 대동약방, 에덴옷집은 동신상회였어요. 기지시리에 오래 거주한 주민들은 점포의 상호가 바뀌었어도 옛 상점의 모습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죠.”

특히 김기정 기지시리 이장은 1980년대 초반까지 섰던 기지시장을 기억했다. 김 이장은 “기지시장은 엄청 커서 없는 게 없었다”며 “3·8일마다 오일장이 섰고, 많게는 한 달에 12번씩 장이 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지시장에는 우시장도 있었다. 송악읍행정복지센터 인근 주차장 자리가 바로 우시장이었다. 시장에는 연탄공장도 있었는데, 어린 시절 기계에서 연탄을 찍어내는 모습이 마냥 신기했던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현재 기지시리 마을회관 바로 밑에는 주점이 있었다. 양조장에서 술을 가져오면 이곳에서 잔술 혹은 주전자 술을 판매했다. 어른들이 심부름을 시키면 약주를 사오곤 했단다.

기지시리에 가장 많았던 가게는?
기지시리에는 약방이 네 곳이나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대전약방, 동양약방, 대동약방, 회춘당이 있었고, 그중에서 대동약방은 기지시줄다리기 줄장인인 초대 인간문화재 故 이우영 선생이 운영한 곳이었다. 당시 대동약방은 늘 주민들로 북적이는 곳이었다.

기지시리에는 다방도 많았다. 길다방, 삼거리다방, 오비다방, 영다방 등의 여러 다방이 자리했으며, 경희옥, 서울옥, 화성옥, 금강옥 등 ‘니나노집’이라고 불리는 술집도 많았다. 이곳에서 패가망신한 사람들도 꽤나 있었다고.

줄다리기 때는 철물점도 식당으로
한편 기지시줄다리기가 열릴 때면 기지시장은 ‘난장판’으로 변하곤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놀고 먹고 마시는 큰 잔치였다. 지난 2010년부터 유네스코 지정을 준비하면서 매년 기지시줄다리기 민속축제를 개최하게 됐지만, 그 이전까지는 윤년 3월 초에 행해졌다. 3~4년에 한 번씩 줄다리기 날이 돌아오곤 했던 것이다.

지금과 달리 줄다리기에 사용할 줄 제작은 큰상회(현 천진식당) 앞에서 이뤄졌다. 이곳에서 줄을 제작하면 공동묘지(현 송악문화스포츠센터) 앞에서 줄다리기 경기가 진행됐다. 줄다리기를 이뤄지면 주민들은 비탈진 공동묘지에 모여 줄다리기를 구경하곤 했다.

줄다리기 행사 때는 장을 보는 재미가 더 컸다. 행사 일주일 전부터 기지시장터에는 주민들이 붐볐고, 이때 장사한 돈으로 3년을 거뜬히 살았을 정도라는 말까지 있었다. 그리고 철물점 등 일반 상가들도 줄다리기 행사 때가 되면 하나의 식당으로 변했다.

“천지개벽한 기지시리”
기지시리는 불과 몇 년 만에 눈에 띄게 변화했다. 기지시리에 단 하나뿐이던 대산아파트에 이어 기지시리를 비롯한 인근 마을에 높은 아파트가 생기면서 식당과 카페 등 상점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로가 신설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광명당을 운영하고 있는 윤태구 대표는 “기지시리가 많이 바뀌었다”며 “토박이들이 많이 줄고 이주민들이 늘면서 옛 추억과 모습이 사라져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무형문화재 제75호 기지시줄다리기 예능보유자 구자동 씨는 “기지시리는 상전벽해·천지개벽한 동네”라며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이 변한 기지시리를 보면 내 나이를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기정 이장은 “현재 기지시리는 원주민과 이주민이 만나 새로운 동네가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에 와있다”면서 “이웃 간 배려를 통해 기지시리가 하나 될 수 있도록 주민 모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지시리의 마을 이름의 유래
1. 줄틀을 보관하는 연못이 있는 시장마을을 뜻한다.
2. 마을 지형이 옥녀가 베틀을 놓고 베 짜는 형국이라 해서 베틀 기(機)자와,
    베를 짜는데 꾸리(실뭉치)를 담궈 놓는 물을 뜻하는 못 지(池) 자,
    시장을 뜻하는 저자 시(市)를 사용해 기지시리로 불렸다.
3. 마을의 지형이 예부터 계단식 전답이 발달해, 농경지에 물을 대주는
    작은 둑(機, 베틀 기자는 지명으로 쓰일 때는 작은 둑을 의미하기도 함)으로
    만들어진 연못(池)이 여러 곳에 있었다.

 


임아연  zelkova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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