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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진 후

350호(2000.12.18)넘어진 후


이민선 코너 73

넘어진 후

어떻게 보면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의 경쟁에서 비롯된다.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도 경쟁의 승리결과이다. 그 경쟁이 아주 미미했느냐, 치열했느냐의 차이일 뿐 시공의 커다란 인연인 것만은 사실이다. 또한 아버지 몸에서 나온 수천만개의 정자가 동시에 출발해 어머니의 난자 속에 가장 먼저 입성한 것이 오늘의 ‘나’인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하다.
성장하면서 질병과의 싸움, 동기간 다툼, 여러 단계의 입학·취직·사랑·승진·축제 등 평생을 통해 죽어 쓰러지는 순간까지 끝없는 경쟁의 연속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한 사람들은 모든 분야에서 싸워 이길 수 있도록 강해지려고 한다.
하다못해 철부지 여섯살 유치원 때부터 50m 달리기를 통해 승리의 쾌감과 패배의 쓴 맛을 가르친다. 이렇게 경쟁이란 삶에 있어서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인데도 그것이 마냥 성장을 해치고 정서를 깨뜨리는 쪽으로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때 빈부해소의 시각쪽에서 바라보고 평준화란 걸작을 만들어 바보세대를 양산할 뻔도 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미리미리 적응하지 못하면 오히려 나중에는 더 큰 부담이 되고 감당의 능력도 저하된다.
그런데 경쟁을 통해서 항상 승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확률로 따지면 한번 실패하고 한번 성공하는 반반 승률도 어렵다. 특히나 입학과 취직이 과제인 인생초에는 최초 성공과 처음 실패가 앞날을 좌우하는 수가 많다.
인생이란 참으로 짓궂은 것이어서 가장 잘 뛰어야 하는 순간, 시기적으로 일생에 단 한번 뿐인 결정적일 때에 넘어지거나 무너지기도 한다. 그리고 경쟁에서 실패한 그 순간의 끔찍한 고통은 완전히 자기몫이다. 가족도 주변 친구도 대신 겪어줄 수 없다. 또한 다시 일어서는 것도 결국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실패의 고통을 겪는 그 순간에는 마치 세상이 다 끝나버린 것처럼 여겨진다. 성격에 따라서는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성공과 실패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누구나 겪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경쟁에서 넘어진 그 다음이다. 넘어진 아이는 땅을 원망하지만 결국 그 땅을 짚고 스스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 계절, 졸업·입학·취직이 겹쳐있다. 어려운 난국 속에서 주변에 주저앉는 사람이 많을 수 있다. 빨리 다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칼가는 용기를 갖도록 하는 것도 인정을 베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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