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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구의 사람아 사람아-합덕 신흥리 전임금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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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삭으니 웃음되는구려

합덕 신흥리 전임금 할머니

슬픔도 삭으니 웃음되는구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몹시 부는 날에는
옆집으로 피난을 가야하는 전임금 할머니.
열살, 열두살에 배고파 집 나간 두아들 기다리느라
이집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합덕읍 신흥리 후경마을의 전임금(75셰) 할머니는 지금 살고있는 집에서 나고 자랐다. 또 이집은 결혼하여 살면서 남편 고수
산씨를 저승으로 보낸 자리이며, 그것도 모자라서 아들 형제를 생이별하고 혼자서 말년을 쓸쓸하게 살고있는 집이다.
집이라고 해봤자 곧 쓰러져 넘어질것 같은 납작초가집에 비와 바람을 막기위해 지붕에는 비닐텐트를 덮어씌웠고, 흙바른 벽은 구멍이 숭숭 뚫려 하우스의 보온덮개인 재생솜으로 막아놓은 집이다.
전임금 할머니는 장마철에 비가 오거나 바람이 몹시 부는 날에는 옆집으로 피난을 가야한다. 그래서 일년중 하고많은 날을 남의 집에서 잠자리를 빌어 지내야 하는 할머니는 노환으로 팔다리가 쑤시고 신경쇠약으로 약을 입에 넣어야 잠을 이룬다.
전임금 할머니는 인생고의 끝간 데까지 간 기가 막힌 인생의 단층을 엿볼수 있는 우리들의 할머니다.
“산절로 수절로 산수간에 나도절로
그속에 절로 절로 자란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하리라”
지금 우리모두는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길거리를 헤매고 있는 사람들과 집에서 조용한 쉼터가 없어 거리를 방황하는 노인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고 지금의 아픔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매일같이 보고있다. 이제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최후의 총연습을 끝났으나 인생의 영원한 연출이 이제 시작되는 전임금 할머니의 참된 삶의 연극은 이제 막을 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들 형제는 10살, 12살 나이에 먹지를 못해 배가 고파 집을 뛰쳐나갔다. 이러구러벌써 20여년이 지나갔고 또 넘어섰으며 강산이 몇차례 변했으나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다. 이제 떠날 것은 다 떠나고 전임금 할머니에게는 더이상 빼앗아갈 아무것도 없다. 남은 것이라고는 늙고 병들은 몸 뿐이요, 낡고 쓰러져가는 궤딱지 같은 방한칸이 전부이니 더 서러워할 것도, 원망할 것도, 망설임도 없다. 그저 “허허”하면서 즐거움이나 퍼서 이웃에게 나누어주자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하시는 것 같다. 마냥 즐거움이 떠나지 않고 할머니 삶속에서 맴돌고 있다.
가난한 사람의 목숨은 부자의 재산보다 더 값진 것이다. 그 값진 목숨을 더 빛내기 위해 살고있는 것이다.
전임금 할머니가 살고있는 후경마을의 전설은 무척 낭만적이고 활기찬 정이 흐른다. 전설에 따르면 후경마을은 서해의 바다에서 살고있는 고래들이 놀던 곳이었는데 이를 고래원장이라고 불렀다. 수백년 전에 이곳은 삽교천의 넓이가 3Km정도가 되는 여울목이었다. 물결이 굽이치는 조수로 인해 등펄과 호수가 만들어졌다. 밀물을 따라 고래들이 올라와 여울목에서 고기를 잡아먹고 노닐다가 간조때는 물따라 바다로 내려가고 또 올라오고 하던 곳이었다. 아마도 고래들이 그곳을 자신들의 휴양처며, 산이있고 나무가 우거진 양질의 별장터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삽교천방조제가 건설되기 전인 20여년 전에도 고래가 물길을 따라 올라온 일이 있다. 그때 이곳의 조수간만의 차는 약 9m정도였다. 고래의 길이는 약 3.5m정도로 새끼고래에 속하는 놈이다. 고래는 물길을 따라 올라오다 길을 잘못들어 큰 물길로 올라온 것이 아니라 얕은 밑물로 접어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에게 난타당하고 결국에는 고향인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객사하는 꼴이 되었다. 이후에 부락 사람들이 고래의 서식처를 기념하기 위해 고래탑을 세워 후세에게 전하고 있다.
불경에 무재철시(無財七施)가 나온다.
1. 화안시(和顔施) 항상 얼굴에 화색을 띤다.
2. 언사시(言辭施) 말을 친절하게 한다.
3. 심시(心施) 따뜻한 마음으로 대한다.
4. 안시(眼施) 눈에 호의를 담는다
5. 지시(指施) 물으면 친절히 가르쳐 준다.
6. 장좌시(狀座施) 앉은 자리를 양보한다.
7. 방사시(房舍施) 잠자리를 깨끗이 해준다.
재물이 우러름을 받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커 적어보았다.
전임금 할머니는 배고파 못살겠다고 집을 나간 어린 두아들을 꿈엔들 잊을 수가 있겠는가? 이제나 저제나 아들의 소식을 기다리며 아들을 만나기 위해 이 쓰러진 집에서 살고 있으며, 아마도 여기서 생을 마감할 것이다.
다행히 이웃부인들이 외로워하는 전임금씨를 위로하기 위해 마실꾼들로 늘 웅성거리며 단칸방에는 웃음이 이어지고 이야기 꽃이 질 날이 없다. 볏짚을 아궁이에 지피면 온통 연기로 가득차고 벽은 검게 그을린 납작집이지만 전임금 할머니의 마음은 넓고도 깊다. 그 깊고깊은 마음 속을 감히 누가 들여다 볼수 있겠는가?

서금구/당진시대 객원기자
합덕대건노인대학장
(0457)363-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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