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3-29 21:01 (금)

본문영역

서금구의 사람아 사람아-합덕 원신흥리 양재량 할머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남매 다 잃고 죽을날만...

합덕 원신흥리 양재량 할머니

6남매 다 잃고 죽을날만...

6.25전쟁을 겪은 50대 후반의 구세대(?)의 기억에서 사라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미국에서 온 구호품이다. 당시는 모든것이 쑥밭이 되고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미국에 의지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굶어 죽을 지경이었다. 특히 도회지에 사는 영세민들은 이를 나위가 없었다. 그래서 정부에서, 적십자사에서, 종교단체를 통해 미국에서 보내오는 구호품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밀가루, 강냉이가루, 우유가루 그리고 헌옷, 양말, 신발등 구호품이란 딱지를 붙여 부산항에 매일 배가 닿아서 산더미 같은 물건을 부려놓고 갔다. 바로 이 구제품으로 잿더미속에서 우리가 살아 갔던 일이 엊그제 같다.
최근 서울에 있는 원불교와 천주교 공동으로 인도의 히말라야 산중턱에 살고있는, 아주 지독히 가난한 “라닥”지방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겨울옷 보내기 운동을 작년 9월부터 시작하여 헌옷등 콘테이너 6대분을 현지로 보냈다는 신문보도를 보았다.
격세지감이다. 불과 30년사이에.
돈은 돌고 돌아야 평화로운 것이고, 물은 흘러야 썩지 않는다. 재물도 한곳에 오래 머물면 사람이 큰 화를 입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지난 시대를 거쳐온 모든 어른들중 슬픔과 좌절, 그리고 비통을 한몸으로 끌어안고 70년동안 계속하여 살고있는 할머니가 우리 이웃에 있어 소개한다.
합덕읍 원신흥리 양재량(88세) 할머니는 넓고넓은 논가운데 외로이 서있는 초가집에서 혼자 살고있다. 공업화에 밀려 농촌의 젊은이들이 고향과 집을 헌신짝 같이 버리고 떠난 바로 그 빈 집에서 5년째 살고있다.
“지구상에 살고있는 모든 형제자매들이여, 그대들이 있으니 참 기쁨니다. 당신들을 진심으로 반깁니다. 저 하늘 높은 곳에 떠
있는 태양은 당신의 것이기도 하고 공기는 모든 인류의 것이며 우리들의 사랑이 모두의 마음을 결집시켜 줄 것이며 그리하여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어나가봅시다.”
“그렇다. 우리들이 갖고있는 많은 재물은 조물주께서 우리들의 손에 일시 맡겨준 재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들의 가정을 위해 꼭 필요한 것만 받은 다음 남는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야 될 것이다.” (프랑스 아루스의 성자)
양재량 할머니는 온양사람으로 18세에 원신흥리에 사는 노씨에게 시집왔다. 그때 논이라곤 한뼘도 없고 앞마당까지 바닷물이 철렁철렁대는 곳에 작은 거루배 한척이 재산의 전부였다. 양재량 할머니는 매일같이 십리 길이 넘는 산동네(우강면 송산리)로 밭일을 다녔다. 그때 품값은 열흘에 겉보리 한되. 남편 노씨는 밀물때 바다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아 그럭저럭 생계를 꾸려갔다.
그사이에 5남1녀의 자식을 두게되었다.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이때부터 양재량 할머니의 기구하고 애절한 삶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기 시작했다.
일본군 징병에 끌려간 큰아들이 만주에서 죽었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둘째와 셋째아들은 일년간격으로 앞마당으로 밀어닥친 바닷물에 휩쓸려 잃어버렸다. 기구한 운명의 악신은 넷째아들을 손님(마마)들게 하여 죽게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막내아들과 고명딸은 홍역을 치르다가 부모곁을 떠났으니 불과 십년 안팎에 이많은 일들이 줄을 이어 일어난 것이다.
양재량 할머니의 고약스러운 인생 수레바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양재량 할머니와 남편노씨가 5남1녀 모두를 잃은 허탈감에 빠져있을때 떠돌이 고아를 노재구(가명. 8세때 입적)라는 이름으로 아들로 맞아들였다. 그런데 어린 재구의 재롱으로 다소나마 위안이 되어 살고있을 쯤 남편 노씨가 건축일을 따라다니다가 그만 지붕에서 떨어진 것이다. 시름시름 1년을 누워있다가 논 세마지기와 초가삼간 다 약값으로 날리더니 그 또한 아들 따라 떠나버렸다.
허!허! 양자 재구를 의지하면서 키워 장가를 들여 자식(손자)까지 낳고 살더니 어느날 갑자기 그 녀석마저 나가버린 것이다.
친어머니도 못 모시고 사는 세상에 가짜어머니를 어떻게 모시고 살겠느냐고 처자식 들쳐업고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벌써 10년전의 일이다. 그때부터 눈물도 마르고 피도 말라 그저 지팡이를 의지하면서 오늘이냐 내일이냐 날짜만 세며 영감님 뒤를 따라갈 준비를 하면서 살고있다. 88세 고령의 나이다.
독수리 알을 주워다가 닭의 둥지에서 부화를 시켰다. 독수리 병아리는 닭의 병아리모양 부리로 땅에서 먹이를 구해먹었다. 점점 자라면서 날개를 퍼드득 거리면서 날개를 치더니 푸른 창공으로 높게높게 날아가는 것이다. 자기가 나고 자란 닭의 둥지를 뒤로 한채...

서금구/당진시대 객원기자
합덕대건노인대학장
363-1991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