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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구의 사람아 사람아-면천면 대치리 홍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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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정의의 실현에서」믿음

면천면 대치리 홍사영

「평화는 정의의 실현에서」믿음

농부가 쟁기로 밭을 갈때에는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밭을 갈아야 한다. 일하면서 뒤를 돌아보는 것은 하고있는 일을 포기하는 행위일 수도 있고, 그일을 망칠 수도 있는 것이며 또 앞에서 밭을 따라가는 소를 내뜻대로 부릴 수가 없는 것이다.
경북 선산땅 낙동강 기슭에는 「지주중류(砥株中流)」라고 네글자가 음각된 비석하나가 우뚝 서있다. 오랜세월 비바람에 그을린 커다란 비석인데 지주중류의 글을 풀이하자면 “거친물결 소용돌이쳐 흐르는 한복판에 뚝 버티고 서 있는 돌기둥”이란 뜻이다.
면천면 대치리 홍사영(75세)씨.
크고 높은 고개마루가 있다하여 대치리라는 동네 이름을 얻고있는 이곳은 산자락을 끼고 두서너집, 혹은 네다섯씩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부락이다.
홍사영씨는 대치리에서 윗대로는 7대조로부터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으니 약 200년간을 산골 마을에서 살고있는 셈이며, 홍사영씨와 아들, 손자까지 함께 지내니 무려 10대를 연이어 살고있는 터전인 것이다.
홍사영씨의 7대조께서는 어찌하여 대치리로 이사를 오게된 것인가.
취재기자가 가상적인 시나리오를 갖고 타임머신으로 2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때 시국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18세기 말엽에서 19세기 초엽으로 접어들면서 순조, 헌종, 철종의 3대를 지내는 동안 조선왕조는 나이어린 군주(君主)가 계승
하여 왕실이 허약해지고, 양반척족(戚族)을 중심으로 한 세도정치가 종사를 전담하게 된다. 그리하여 국정의 문란함이 걷잡을 수 없게되자 국민생활의 경제적인 파탄과 사회적인 불안, 동요는 날아 갈수록 높아만가고 사색붕당으로 나라는 어지럽고, 생명의 위안도 보장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혼란 와중에 홍사영씨의 7대조께서는 작은고을에서 벼슬살이를 하였으나 굳건하고 강직한 성품의 선비인지라 살던 곳을 초개같이 버리고 식솔을 거느려 이곳 산골마을로 옮겨앉게 되었다. 그뒤 고고한 성품만을 간직하면서 조용하게 세상의 흐름에 괘념하지 않았던 것이다.
홍사영씨의 조부께서는 일본사람의 글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완강하게 거부하시면서 홍사영씨를 보통학교(국민학교)에 보내지 않으셨고, 글방으로 보내어 한학을 배우게 하였으니 철들고난 후부터 21세때까지 한학을 하여 시전(詩傳)까지 배웠다고 하신다. 이것이 학력의 전부라고 일러주신다.
홍사영씨는 충북 옥천에 있는 풍진중학교의 서무과에서 일하면서 한문과 선생으로 8년동안 후학들을 가르쳤으며 그후에는 고향 대치리로 돌아와 농사일을 돌보고 땅을 지키면서 아들에게 또 그아들에게 물려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홍사영씨는 70여년의 생활을 농촌의 밭과 산골의 오솔길을 걸어가면서 그길을 인생의 길로 삼고 살아온 분으로 선비의 덕목만을 간직한 채 좁은 길을 걷고 또 걸으며 살았다.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충고할 말씀을 부탁드렸더니 홍사영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집의 가훈은 정직과 성실입니다. 젊은이들의 올바른 발전이란 무수한 어려운 역경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역경때문에 넘어지지 말아야 하고, 넘어지면 즉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 역경이 젊은이들을 성장시켜줄 것이고,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더 용감하게 대처해야만 나혼자 뿐아니라 이나라를 이끌어 갈수 있는 동량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홍사영씨는 지금 처해있는 우리나라의 사정, 즉 정치적인 것에도 일침을 가하신다.
“평화 평화하지만 평화라는 것은 전쟁이 없는 상태만도 아니고, 적대세력간의 군비등의 균형유지만도 아니며, 어느 한쪽이 전체적으로 지배하는 것만도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의를 서로가 얼마나 실현하는가에 평화가 따른다”라고 강조하신다.
홍사영씨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름방학동안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충효교육과 한문, 서예를 10년째 강의하고 계신다. 근래에는 성균관 홍문원에서 실시하는 간경과에 합격하여 유교의 부증학의 자리에도 올라있으시다. 그래서인지 자식들이나 서랑(사위)들도 전부 교육자로서 이나라의 일꾼들을 길러내는 최전방에 우뚝 서있는 사람들이다.
홍사영씨에게 오늘의 사회에 교훈을 주신다면 어떤 것이냐고 질문을 하니 “로마제국의 멸망은 부패와 향락이 준 당연한 결과
인 것처럼 공자께서는 나라가 망하는 것은 군대가 없어서가 아니라 예(禮)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면서 지금 세상에서 예가 자꾸자꾸 멀어져감을 대단히 안타까워 하신다.

서금구 / 본지 객원기자
합덕대건노인대학장. 363-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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