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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구의 사람아 사람아-김종국 한마음 한몸운동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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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숟가락의 쌀이 조용한 사랑과 나눔의 변혁을 일으키고 있다”

김종국 한마음 한몸운동 본부장

쌀나누기 실천,
“한마음, 한몸운동”본부장

“한 숟가락의 쌀이
조용한 사랑과 나눔의 변혁을 일으키고 있다”

반만년 긴 역사속에 큰 획을 긋고 지금까지 살아숨쉬듯 떠오르는 역사적인 인물은 하늘의 별수만큼이나 많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알려진 우리고장의 선조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은 수의 인물밖에는 없다.
몇 안되는 인물중 우리가 살고있는 우리고장이 낳은 인물인 김대건(金大建)신부가 으뜸중에 으뜸으로 꼽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는 세계에서 9억이 넘는 천주교신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많은 세계인들에게 알려진 인물이다. 신앙에 불멸의 금자탑을 쌓아 널리 추앙받는 인물이며 또 천주교에서는 84년도에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모름지기 역사의 마지막장이 넘어갈때까지 그이름은 더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될것이 확실하다. 김대건신부는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에서 1821년 8월 21일에 탄생하였으니 바로 어제가 이땅에서 고고의 울음을 터뜨린지 꼭 173년이 되는 날이기에 여기에 적는 뜻이 있다.
김대건신부는 역사상 처음으로 서양학(西洋學)을 공부하기 위하여 외국으로 유학한 사람이다. 1837년 6월에 마카오에 도착하여 1842년 2월까지 6년간 천주교 신학(神學)을 공부하였으며 그밖에도 수학, 천문, 지리와 서양사를 공부했고, 외국어도 무려 6개국어를 알고있어(중국어, 불어, 영어, 포루투칼어, 라틴어) 그당시 서양사정에 정통한 지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법에 의하여 1846년 9월 16일 참수형을 당하고 군문효수형에 처해졌었다. 아깝고 꽃다운 나이 25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김해김씨의 안경공파(安敬公派)의 자손이었던 김대건신부!
합덕읍 운산리에 거주하는 김종국(60세)씨도 김대건신부와 같은 김해김씨 안경공파의 후손이며 독실한 천주교신자이다. 김종국씨는 천주교내 사회복지부문을 담당하는 “한마음 한몸운동”의 신합덕천주교회 본부장직을 89년 5월부터 맡고있다. “한마음 한몸운동”은 한국천주교회가 88년부터 시작한 운동으로 지금은 모든 본당에 보급되어 헌미, 헌금과 헌안, 헌혈, 입양, 소년소녀가장돕기등을 하는 사회복지운동이다.
김종국씨가 맡은 합덕의 “한마음 한몸운동”본부에서는 헌미운동을 사업목표로 삼고 800여세대의 천주교신자 가정에 밥그릇을 나누어주었다. 밥 지을때마다 한숟가락씩 불우한 이웃을 돕고 이웃과 먹거리를 나눈다는 의미로 밥그릇에 담아넣는 것이다.이렇게하여 밥그릇이 차면 운동본부로 쌀을 갖고오고 또 밥그릇을 채우고 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한숟가락의 쌀이 1년에 30여가마를 넘었으며 이 쌀을 돈으로 바꾸어 신자 또는 미신자를 가리지 않고 화재를 당한 가정, 수재를 입은 농가, 가장(家長)이 교통사고를 당해 어려움을 당하는 가정, 그리고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데 사용하고 있다.
“천주교신자 각자가 사랑과 나눔을 통한 조용한 변혁을 일으키고 있다. 우선 우리들의 손길이 닿는 이웃부터 시작하였으며 모든 사람들이 하나되어 참다운 평화를 이루는 첫걸음이 될것으로 믿는다”고 김종국씨는 헌미운동의 취지를 설명한다.
비록 작은 나눔의 사랑이지만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사회적 불균형의 깊은 골을 조금씩 조금씩 메워나갈때 사랑이 넘처 흐르는 살기좋은 내고장이 될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돈 또는 재산이 필요한게 당연하다. 그럼으로 우리는 많게든 적게든 재산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재물은 있다가도 없어질 수도 있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다. 이런 재물에 눈을 감고 이웃의 불행을, 이웃의 아픔을, 이웃의 가난을 모르는체 지나치는 사람중에 나도 끼어있지 않나 생각해 봐야 할것이다.
김종국씨가 본부장인 “한마음 한몸운동”에서는 대전에서 실시하는 헌혈운동에도 100여명이 2회씩 참석했으며 적십자사를 합덕으로 초청하여 200여명이 헌혈을 한적도 있다.
우리 조상들은 명절에 떡 해먹을 쌀이 없어도 가야금으로 떡방아를 찧던 풍류를 지녔고, 나물먹고 물마시고 밝은 하늘에 시조가락을 띄우던 느긋한 여유와 맑은 멋을 지니고 사셨다. 다 흉내는 낼수 없다 하더라도 아주작은 쌀 한숟가락의 마음의 여유정도를 갖고 살아간다면 오늘같은 각박한 인심에서도 큰 변화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쌀 한숟가락씩이 모이는 정성이 당진군내에 퍼져 나갈때 엄청난 기적으로 변화될수 있으며 우리의 행복은 저 먼곳에 있는것
이 아니고 바로 우리생활안에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앞으로는 소년소녀가장돕기에 더욱 노력하겠다”라고 김종국본부장은 강조한다.
다 익은 감을 따면서 까치밥으로 두서너개씩 나무에 남겨두었던 어버이들의 포근하고 멋갈스러운 여유, 세계적인 인물을 배출한 우리당진, 지금 우리에게도 실행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이웃과의 사랑나누기의 멋을 풍길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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