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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구의 사람아 사람아-경신상회 이경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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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치 한마리를 오토바이로 배달해주는 사람

경신상회 이경수씨

꽁치 한마리를 오토바이로
배달해주는 사람

참다운 사랑이란 헐벗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잊지 못하는 눈물과 함께해야 되는 것이다.

24시간 복잡한 시장에서 맴돌고 있으니 합덕읍내에서 별로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꽁치 한마리를 오토바이로 배달해주는 사람’하면 아하! 하면서 알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그가 바로 합덕시장에서 어물상을 경영하는 경신상회 주인, 이경수씨이다. 이경수씨의 삶의 내력을 간추려 엮어본다.
6.25전쟁을 겪은 세대중에 배고픔과 헐벗음, 그리고 추위와 전쟁의 공포에 떨지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절대적인 빈곤층이었고 그들끼리 등을 맞대고 몸을 녹여가면서 먹거리 전쟁을 치러야했다. 가족들은 생사도 모르며 뿔뿔이 헤어져 살아갔었다. 그래도 농토가 있는 농가는 그중 양반계급에 속했던 시절이다.
이경수씨가 두살 때 고향 옹진에서 아버지 등에 업혀 전쟁을 피해 나온 곳이 뭍에서 지척으로 건너다 보이는 연평섬. 그 당시
그곳 주민들은 한달 이내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간단하게 꾸린 개나리 봇짐을 어깨에 걸치고 섬에서 전쟁을 피했던 것이다. 그러나 달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고향땅으로 올라갈 수 없는 모두의 허탈감, 마치 르완다의 난민을 연상하면 우리들의 그때 상황을 가늠할 수 있을것이다. 섬에서 피난하고 있던중 이경수씨의 아버지는 병들고 먹지못해 죽었으며, 어머니는 공허와 외로움을 달래다가 재가를 하게된다. 어린 이경수씨는 의부와 어머니를 따라 남쪽으로 피난하였는데 자리잡은 곳이 합덕. 그때가 다섯살의 어린 나이였다.
피난살이에 가난하게 지냈던 일, 그리고 의부 밑에서 어렵사리 살면서 합덕국민학교와 합덕중학교를 진학했으나 이런저런 어려운 사정이 겹쳐 중학교 2학년에 중퇴를 하였다. 그리고 어린나이에 이집 저집으로 옮겨다니면서 점원노릇을 한다.
바로 그 당시 필자는 혈기왕성하던 청년으로 군에 입대, 총을 들고 강원도 산등성이를 누비고 있었는데 모든 국민이 가난에 쪼들리고 전쟁의 두려움에 의기소침해서 지내고 있었다. 그때는 왜 그다지도 마음까지 가난하고 쪼들리며 평화롭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필자는 89년도에 배낭여행을 하던 중 방콕의 수상가옥을 관광한 일이 있다. 양철조각들로 누덕누덕 얹혀놓은 지붕, 강바닥에 말뚝을 박고 판자조각으로 얼기설기 벽을 둘러친 물위에 집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강물이라고 하지만 우리들의 시궁창물 같이 시커먼데 그 안에 들어가 덤벙덤벙 수영하는 꼬마들, 그 물에서 양치도 하면서 대소변도 해결하는 그들의 모습. 차마 사람들이 살아서는 안될 더러운 환경 속에서도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나는 천진한 꼬마들을 내려다보니 더러운 환경은 잊어버리고 그들의 생활속에서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찾아볼 수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구멍뚫린 처마끝에 이름모를 남방의 꽃들이 화분에서 넘실넘실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게 벌거숭이로 물장구를 치는 꼬마들과 어울려 평화로움을 맛보게 하니 고달픈 여행에도 보람을 만끽할 수 있었음을 기억에서 잊을 수 없다.
이경수씨는 26세때 부인 지경자씨와 결혼하여 비록 단칸 셋방이지만 훗날에 가슴 뿌듯한 설계를 계획하면서 작은 구멍가게를 차려 살았다. 허리띠를 조르면서 한푼도 낭비하지 않고 생활하니 작은 돈이나마 조금씩 주머니가 불어나는 것을 보면서 삶의 의욕과 희망의 불빛이 환하게 타오름을 몸으로 느꼈다. 거기다 딸들을 낳게되니 집안의 분위기는 더 밝아지면서 지난날의 고생스럽던 일도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었다.
‘호사다마’라고 하였듯이 심심풀이로 친구들과 어울려 화투장을 만지다가 노름판으로 번져가는 것을 물리치지 못하고 함께 몇밤을 지새웠는데 결과는 뻔할 뻔. 구멍가게와 단칸방마저 빚잔치의 재물로 바치고 470만원이라는 큰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으니 그때 32세의 나이로 18년전 악몽의 해였다.
이때 부인 지경자씨가 장바닥에 깔판을 깔고 바지락의 껍질을 벗기면서 소매를 걷어올렸다. 어느날 부인이 5만원을 주면서 ‘군산에 가서 생선을 받아와 팔면 수입이 좋을 것’이라고 제안을 한다. 이로부터 군산나들이를 시작하여 한눈을 팔지않고 10년동안 장사를 하니 빚도 갚고, 시장 안에 어엿한 가게도 사고, 또 집도 마련하면서 꾀 큰 돈까지 예금을 할 수 있게된 것이다.
이경수씨는 이제는 오토바이 타고 배달다니기에 바쁜 나날들이다. 부지런히 더 돈을 모으면 그때까지 어떻게 변신할 것인지..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으리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될 것이다. 이경수씨는 치매로 고생하는 장모님을 8년전부터 극진하게 모시고 있음도 지나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참다운 사랑이란 돈으로 잴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참다운 사랑이란 헐벗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잊지 못하는 눈물과 함께 해야 되는 것이다. 재물이란 것은 나하나의 것이 아니다. 서로서로 사랑으로 나눔을 가질 때 참다운 재물로서의 가치가 형성되고, 또 함께하는 이웃들의 사촌으로서의 진국이 우러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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