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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운정포구 4
“수십만 평 갯벌에 백합이 수두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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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만은 조수간만의 차가 10m나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큰 조수차를 보인다. 썰물 때면 바닷물이 멀리 빠져나가 갯벌이 넓게 나타나서 옛날에는 이곳에서 자염을 생산하거나 굴, 백합, 조개 등을 채취하기도 했다. 육지 쪽으로 쏙 들어온 만 안쪽이 염전으로 개발되거나, 간척돼 논으로 이용돼왔다.

운정리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옛 시절, 포구에서 잡아 올린 수산물을 언급할 때 반드시 ‘백합’을 언급했다.

“한진 위에서부터 이 위까지 지금 여기 막힌디, 여기 안이두 뻘이 모래뻘이 겁나게 지다랗게 크다구. 일명 지뻘이라고. 지뻘, 새뻘, 멍애뻘. 뻘마다 다 이름이 있어. 그때 당시 그런 뻘에서 백합을 많이 잡았어. 멍애뻘은 함상공원 있는 그 마중짝인데 그건 쪼그마. 새뻘이 큰 뻘이여. 저 백합, 바지락 이런 게 주로 많이 나왔지.” (전용순)

“공포 앞은 걸어서 내려갈 수도 있었는데 백합이 무진장 많았어요. 그걸 내가 배 하나에 백 명 이상은 싣고 다니면서 잡았어. 배 타고 조금 나가면 저 앞인데. 거기가 인제 모래뻘이여. 골을 건너가면 뻘인데 물 빠지고 나면 맷돌포 아래까지 다 모래인거여.” (김기호)

“어릴 때 우강면 신촌리에 살았는데, 누나가 공포로 시집을 왔었어요. 방학 때 자전거 타고 누나네 놀러 오면 동생이 왔으니 뭐든 잘해주는데, 보리밥을 주는 거예요. 전 그때만 해도 들에 살 때니까 보리밥은 안 먹고 살았는데. 생각해보니 살기가 어려웠던 거예요. 여기 삽교천 막기 전까지 공포는 논도 없었잖아요. 그러니 제가 볼 때는 이 공포리 사람들은 대다수가 바다에 종사했을 거예요. 그때 여자들이 열 댓살만 되면 전부 백합을 잡으러 다녔어요.”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우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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