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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1 10:55
  • 호수 1309

[세상 사는 이야기] 신현종 스타일업 프로헤어 대표
“대구 도착해서야 부모님에게 봉사 왔다고 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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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코로나19 확진자 늘자 의료봉사 떠나
여전히 남아 있는 어릴 적 소방관의 꿈

신현종 스타일업 프로헤어 대표(39)가 처음 마주한 대구는 적막했다. 당진에서 대구로 향하는 3시간 동안 차 한 번 막히지 않았고, 도심의 거리마저도 한산했다. 그는 대구의료원에서 45일간 봉사하고 돌아와 다시 당진에서의 2주동안 자가격리를 마치고 두달여 만인 지난달 22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의 작은 손길이 닿았던 대구 역시도 일상을 차츰 찾아가고 있다.

라면을 전해주지 못했던 아쉬움
신 대표는 코로나19 의료봉사 소식을 듣곤 바로 지원했다. 당진을 떠나 대구에 도착할 때까지도 미용실 직원은 물론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 그는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시점이었지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봉사에 나섰다”고 말했다.

대구의 현실은 마치 전쟁터 같았다. 그가 처음 병원에 도착해 마주한 것은 이중구조로 덧대진 병실에 보호의를 입고 들어가는 의료진이었다. 주의사항 및 준수사항을 들은 뒤 본격적으로 봉사가 시작됐다. 신 대표는 현장에서 의료 인력 보조를 맡아 거동이 어려운 요양원에서 온 확진자의 식사를 돕거나 감염성 폐기물 처리, 검체 이송 등을 도왔다.

대구의료원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를 가까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중학교 3학년 아이가 기억에 남는다고. 계속된 양성 판정으로 5주 넘게 퇴원하지 못하자 아이는 날로 힘들어했고, 그런 모습을 보며 신 대표는 병실에 가면 꼭 아이에게 ‘잘 버텼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말을 건네곤 했다. 하루는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었고, 아이는 라면이 먹고 싶다고 답했다.

하지만 병실 안으로 라면을 가지고 갈 수 없어 전해주지 못한 것이 아직도 신 대표의 마음에 남아 있단다. 반면 입원한 확진가족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아 퇴원이 결정됐을 때는 환자들과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화장실도 못가요”

봉사 현장은 열악했다. 보호의를 입고 조금만 움직여도 속옷까지 땀으로 젖을 정도였다.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에어컨조차 틀지 못해 늘 더위와 싸워야 했다. 마스크와 고글까지 착용한 상태에서 몸이 간지러우면 긁지도 못하고 참아야 했고,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고 물조차 쉬이 마시지 못했다.

치수가 맞지 않는 보호의가 배분되는 날에는 옷이 벌어지는 틈 사이마다 테이프를 칭칭 감았다. 그는 “봉사라는 좋은 마음을 갖고 있지만 몸이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며 “밀접 접촉자라서 감염에 대한 불안함도 있었고, 물품 소진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고 말했다.

한편 숙소를 정할 때도 대구의료원 봉사자라서 퇴짜 맞기 일쑤였고, 집에서 보호의를 착용하고 병원으로 향할 무렵 탑승한 택시에서 승차 거부를 당하기도 했다. 그는 “이해는 하지만 섭섭하긴 했다”고 말했다. 봉사를 쉬는 날에도 숙소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 역시 어려움 가운데 하나였다.

“마음에 남은 소방관의 꿈”

한편 신 대표는 스타일업 프로헤어뿐만 아니라 장루이다비드 당진점과 이철헤어커커 당진점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당진에서 세 곳의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의 꿈은 소방관이었다. 신 대표가 중학생일 무렵 차가 난간에 매달려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에 한 소방관이 탑승해 있던 어린아이를 구조하면서 동시에 무게 중심을 지켜내고자 자신이 차 안으로 들어간 모습을 봤다. 이후 신 대표는 소방관을 꿈꾸기 시작했고, 대학 역시 관련 학과로 진학했다.

졸업 후 응급구조사로 5년 동안 현장을 누비며 일을 했지만, 개인사업을 하기 위해 그만두고 미용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 대가를 사업을 통해 보상받겠다는 마음으로 10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며 “하지만 아직도 누군가를 구하는 일에 대한 꿈이 마음에 남아있다”고 말했다.

“일상에서도 늘 생각나요. 앞에서 누군가가 넘어지거나 위험한 순간을 마주해도 구조대가 아닌 다른 옷을 입고 있어 쉽게 나서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죠. 이번 봉사를 다녀온 뒤에는 그 마음이 더 커지더라고요. 언젠가는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고 싶어요. 또 강사로 나서 응급기술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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