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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은 부업할 곳도 없어요”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경력단절 여성들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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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 면접서 쏟아지는 ‘연애와 결혼’ 여부 질문들
기혼, 육아와 일 같이 하기 어려워
정체성·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공부 시작

<8명이 말하는 일자리 대책과 어려움> 
“취업 알선까지 연결된 교육이 없어요. 직업 교육을 해도 취업이 이어지지 않아 어려워요. 
 취업이 연계된다면 목표를 열심히 가지고 교육에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보육교사와 간호조무사, 아이돌보미 혹은 카페와 패스트푸드점 등 일할 곳이 너무 한정적이에요.”
“당진시에는 청년인턴제도 있고 노인일자리도 있는데, 저희 같은 중년 여성을 위한 일자리는 없나요?”
“실습을 마치고 6시에 집에 가도 아이들 돌보고 집안일 하니 정신없이 하루가 다 갔어요. 
 유연한 시간제 일자리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결혼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다시 잇기 위해서 새로운 일상을 그릴 무렵 들려오는 소리들. “마흔 넘은 여자 이력서는 바로 쓰레기통에 들어간다더라”, “무슨 취직이냐 애나 봐라”,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일할 곳은 식당이나 마트밖에 없다” 등이었다. 김혜옥 씨는 “나 또한 젊을 때 꿈이 있던 사람이었지만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내 인생이 후퇴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진에 정말 일자리 없어요”

자꾸만 쳐지는 어깨를 가까스로 부여잡고 사회로 나왔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일자리가 없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정말로 없었다. 심지어는 당진에는 부업조차 구하기 힘들다고. 몇 년 전 잠시 마늘 까기와 명절 쇼핑백 접기가 반짝 늘었던 것 빼고는 간간이 전기 배선 연결 등이 있을 뿐이다. 곽은지 씨는 “지인이 10원어치도 채 안 되는 전선을 한 방 가득 넣어 놓고 작업해도 남는 건 손에 상처뿐이라더라”며 “심지어 부업을 구하기도 어려워 정보력과 연줄 없이는 당진에서는 일도 못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당진에서 경단녀가 할 일이 없어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행담도는 물론 아산까지 가서 하는 경우도 있다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

8명 중 유일한 미혼인 30세 홍혜령 씨는 경단녀는 아니지만 취업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매한가지였다. 면접 현장에 서면 들려오는 “애인이 있냐. 없으면 생길 것 아니냐. 있으면 결혼할 것 아니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그럼 애는 낳을 것이냐” 등의 질문들이 쏟아졌단다. 그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개인적인 질문을 면접 현장에서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모든 일은 불과 1~2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정체성 고민에서 시작
“집에 있으면 몸은 편한데 한편으로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이 고민되더라고요. 나를 찾고 싶었고, 자기개발을 하면서 자존감을 높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김혜옥 씨) 

8명의 여성들은 지난 1일부터 3주 동안 당진가족성통합상담센터(센터장 신순옥)에서 사회복지실습을 하고 있다. 실습을 마치면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공부를 시작한 이유도 제각각이다. 경영학을 전공한 김혜옥 씨(40세)는 대학시절 봉사동아리에서 활동했고,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어 사회복지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반면 전산 분야에서 일했던 유서연 씨(42세)는 본인이 ‘나이가 많아 늦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가 비슷한 꿈을 꾸는 것을 보고 힘을 얻어 시도하게 됐고, 막상 일을 해보니 생각보다 주저할 일은 아니였다고 여겨졌단다.  

38세의 임연주 씨는 부산에서 왔다. 아이를 낳기 전엔 주말부부로 살며 일을 계속해 왔다. 하지만 첫째 아이를 낳고 당진에 잠시 있자고 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아이들이 커가며 더 나은 교육을 위해 경제적인 이유를 고민하며 일을 알아봤다. 하지만 정시퇴근조차 육아에 부담이 됐고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도전하게 됐단다. 

전문적으로 일하고파

반면 34세의 김애경 씨와 45세의 이정현 씨는 자신이 그동안 하던 일을 좀 더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시작했다. 한 때는 삼성전자에서 근무하고 미용사로도 일한 김애경 씨는 결혼으로 경력단절 여성이 됐다가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잠시 일했다. 장애인복지의 열악함을 마주한 그는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자 공부를 시작했다. 

세 아이의 엄마 이정현 씨는 가족봉사단을 하면서 요양원 등을 방문했고, 복지시설을 방문하면서 복지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곽은지 씨(40세)는 젊었을 땐 사무직으로 근무하다 아이를 키우는 10년 동안 경력이 단절됐다. 육아로 보육교사가 친근하게 느껴져 자격증을 취득하고 2년간 일했지만 점점 낮아지는 출생율로 인한 어린이집의 현실과 체력의 어려움,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사회복지를 알게 됐단다. 

“일 생각할 겨를 없었죠”

이 중에 가장 연장자이자 권설희 씨(48세)는 18년이라는 경력 단절을 깨고 아들의 한마디로 도전하게 됐다. 그는 “첫째 아이를 학교에 보내니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또 그러다가 셋째 아이가 태어나 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며 “그러다 막내아들이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건지, ‘분식집 하자’며 맞벌이를 권유하면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작을 고민했는데 하다 보니 끝이 맺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가장 최연소 홍혜령 씨(30세)는 법학을 전공했지만, 틀에 박힌 것을 싫어했던 성격으로 20대엔 서비스직 등 여러 일을 두루 했다.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지 못하던 중 노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사회복지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이제 시작”

실습을 마치면 이들에겐 2급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손에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서로가 꿈꾸는 것들은 다르다. 누군가는 자격증 취득에 재미를 붙여 다음 자격증 준비를 하고, 다른 이는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계획이다. 또는 지금이라도 자신에게 맞는 복지 분야를 찾아가고 싶단다. 유서연 씨는 “이제 시작”이라며 “앞으로 사회복지와 관련된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또 다른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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