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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12 19:03
  • 호수 1311

[세상 사는 이야기 화살처럼 지나간 궁사의 인생
활 쏘는 90대 노인 류창환 옹 (송산면 부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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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이 달려온 고된 삶에서 만난 궁도
국수정 건립에 참여한 지역 궁도의 역사

사정 총괄책임자 ‘사두’ 맡기도
“젊은이들 궁도에 관심 없어 아쉬워”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를 가진 국수정에서 94세의 류창환 옹은 전통을 지켜나간다. 그와 함께 궁도를 하며 국수정의 시작을 지켜봤던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들의 정신은 국수정에 남아 후배 궁도인의 마음 속에 살아 숨쉰다.


나이 50대에 시작한 궁도
송산면 부곡리에서 나고 자란 류창환(94·송산면 부곡리) 옹은 50대에 궁도를 시작했다. 가난한 집안형편에 류 씨는 큰 돈을 벌고자 젊은 시절 소 장사를 시작했다. 전국을 다니며 소를 매매했다. 장사한다고 설움도 많이 받았지만 4남매를 키우며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쉼 없이 달려온 고단한 그의 삶에 어느 날 다가온 것이 궁도였다. 일하느라 별다른 취미가 없었던 그에게 우연히 시작하게 된 궁도는 삶의 즐거움이 됐다. 류 옹은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궁도로 풀곤 했다”고 말했다.

국수정의 역사를 함께 열어
당시 송악파출소 박석규 소장의 추천으로 궁도를 시작했다는 그는 국수정 초창기 멤버다. 지금은 활을 쏠 수 있는 사정이 마련돼 있지만 과거에는 주변에서 활을 못 쏘게 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활을 쐈다. 10번 넘게 사정을 옮겨 다녔던 국수정은 그를 포함해 궁도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당진군이 토지를 마련해 현재의 국수정을 마련했다.

국수정의 역사를 함께 한 류 옹은 국수정 초순몰기 1호란다. ‘몰기’란 화살 5발을 145m 떨어진 과녁에 모두 명중시킨 것을 말한다. 류 옹은 “활을 쏘는데 5발 모두 과녁에 맞출 때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궁도를 처음 배우기 시작하면 ‘신사’라는 호칭으로 불리는데, 몰기를 하면 이때부터 신사 대신 ‘접장’이라는 칭호가 붙고 궁도인으로 인정을 받는 만큼 몰기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각궁 촉감 좋지만 온도·습도에 민감”
국궁은 한 번에 5개의 화살을 쏜다. 실력에 따라 1단, 2단, 3단 등 단수가 정해지는데 화살 45발 가운데 25대를 과녁에 맞추면 1단이 된다. 단 취득에 큰 욕심이 없었던 류 옹은 1단이란다.

또한 국궁에는 개량궁과 각궁 두 가지가 있다. 개량궁은 평상시 사용하기 좋게 만든 반면, 각궁은 전통활로 소뿔과 힘줄, 대나무, 뽕나무, 참나무 등으로 만든다. 개량궁, 각궁 모두 쏠 수 있지만 5단부터는 개량궁이 아닌 전통활인 각궁과 전통화살인 죽시를 써야 한다.

류 옹은 “각궁을 쏘면 촉감이 좋고 마음이 안정된다”며 “하지만 온도와 습도에 예민해 관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각궁과 개량궁 모두 사용했지만 고령의 나이인 현재에는 주로 개량궁을 쏜다고.

마당에 연습터 마련
얼마나 궁도를 좋아하는지 집 마당 한쪽에 그만의 연습터를 마련했다. 긴 막대를 땅에 꽂고 줄을 연결했는데 이 줄에는 화살이 달렸다. 줄 덕에 활을 쏘아도 화살이 다시 돌아오니 얼마든지 연습할 수 있단다. 류 옹은 집에 있다가 무료할 때면 연습터로 향한다. 이곳에서 자세를 교정하고 연습하며 시간을 보낸다.

대회에서도 최고 연장자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류 옹에게는 국수정이 그런 존재다. 젊은 시절에는 국수정에서 활을 쏘며 일의 스트레스를 풀었고 즐거움을 얻었다. 90대의 나이인 요즘에도 한 달에 절반 정도는 국수정에 간다. 활을 쏠 때도 있고, 활을 쏘지 않고 잠시 둘러볼 때도 있다.

국수정에는 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류 옹은 사정의 총괄책임자인 ‘사두’를 맡아 국수정을 관리하기도 했다. 1996년에서 1997년, 1999년에서 2000년에 제5대·7대 사두를 했던 그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현재 23명의 사원이 있는 국수정에서 류 옹은 최고령 회원이다.

간간이 충남도, 전국대회에 참여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대회에서 최고 연장자로 소개되기도 한다. 류 옹은 “지금 내 나이에 활을 당기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라며 “궁도를 계속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궁도인 많아졌으면”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 옛날 그와 함께 국수정에서 활을 쏘았던 이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그는 “국수정 창설자 중에서는 나 혼자 남은 것 같다”며 “역사를 함께 했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흙으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당진에는 국수정을 비롯해 읍내동에 학유정, 신평에 망객정, 대호지에 충장정이 있다. 그 중 충장정은 갈수록 궁도인들이 줄어들고 안전상의 문제로 폐정됐다. 류 옹은 “대부분 50대가 넘은 사람들이 궁도를 하고 있다”며 “궁도인 중 젊은 사람들이 많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20~30대 청년이나 학생들의 관심이 적은 게 안타까울 뿐이란다.

“궁도로 전통을 이어가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하지만 점점 궁도라는 우리나라 전통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요. 궁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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