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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0.06.16 15:06
  • 호수 1311

[칼럼] 손월순 당진수필문학회원
감자꽃 길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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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이 끝나고 저녁놀이 어스름한 시간에 공동체 텃밭에 나갔다. 아마추어 느낌이 물씬 나는 밭에 두벌 시금치 파종을 하고 허리가 아파올 즈음, 송아지 만한 개를 산책시키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는 “감자 밑을 크게 하려면 감자꽃을 따주세요~”라고 말하며 지나갔다.

‘베짱이처럼 놀자’라는 도시농업공동체를 만들고 텃밭 한 귀퉁이에 제일 먼저 감자부터 심었다. 회원 여덟 명이 손바닥 만한 텃밭을 세 군데로 나누고 영주팀, 희자팀, 시연팀으로 갈라 도시 속의 농촌을 살아보고 있다.

처음에 모여 밭에 가는 날, 베짱이처럼 놀 준비가 된 회원들은 장화도 사고 괭이, 호미를 손에 들고 한 시간짜리 농부가 됐다. 처음 신어본 농업용 장화는 꼭 스키 부츠를 신은 듯 어기적걸어지고 괭이도 호미도 쉽게 한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영주팀과 희자팀은 구획을 나누어 놓을 곳을 삽으로 팠다. 퇴비를 뿌리고 다시 한번 덩어리진 흙을 부수고 고랑을 만들어 감자를 심었다. 겨우내 얼어있던 밭을 갈고 나니 주먹만 하고 얼굴만 한 흙은 우리의 구슬땀을 많이도 요구했다. 시연팀 역시 농사라고는 해보지 않아서 덩어리진 흙을 부수고 심느라 제법 농부의 거친 숨소리를 내었다.

신께서는 씨를 뿌리고 싹이 나지 않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역시나 흙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어설프게 파종했어도 지금은 제법 무성한 감자밭이 됐다. 새봄 일찍 파종했던 씨앗에서는 아삭하고 쌉싸름한 식감과 맛을 주는 로메인 상추도 되고 자주색 상추도 되고 시금치도 됐다.

어린싹은 솎아서 먹고, 제법 쌈 모양으로 자랐을 때는 큰 잎만 따다가 각자의 저녁 밥상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화수분이라고 했던가. 아침에 가면 또 딸 것이 생겨 시장바구니 한가득 담아온다. 진주네랑 산호네, 정 선생까지 나누었다. 지난달에는 한 바구니 수확하여 지역 장애인단체와 팜파티도 하며 함께 노동의 기쁨을 누렸다.

시연이는 엄마와 함께 텃밭을 다녀간다. 진짜 농부였던 시연이 엄마는 텃밭을 재밌어한다. 시연이 엄마는 풀도 뽑고 고추, 피망, 땅콩을 심어가면서 젊었던 시절, 배고프고 힘들었던 그때를 회상하신다. 미정이는 옥수수를 한판 내다가 남들 쉬고 있을 시간에 심어놨다. 옥수수 잎사귀가 어찌나 무성하게 자랐는지 시원한 바람에 흔들리는 풍광에 미정이의 미소가 보인다. 희자는 시금치의 맛에 빠져 새벽마다 텃밭 나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베짱이처럼 놀자 텃밭에는 특별한 규정은 없지만 비닐 사용하지 않기, 농약 사용하지 않기, 주변 쓰레기 줍기 등을 실천한다. 아침에 가는 사람은 새벽 안개를 가르며 부지런한 새들의 점호를 받는다. 저녁에 가는 사람은 해지는 저녁놀을 보며 편안한 시간을 허락해준 신께 감사드린다. 예쁘게 핀 감자꽃을 따서 꽃길을 만들어 보았다.

“여보시오 농부님들 감자꽃길만 걸으시오.”

 

>> 손월순 씨는
- 도시농업공동체 ‘베짱이처럼 놀자’ 회장
- (사)대한미용사회 당진시지부장
- 당진수필문학회 회원
- 살롱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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