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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웃의 이야기, 소상공인 16
“세월 담긴 가게…미련 때문에 못 접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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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면 천의리 천광사
간판조차 없는 40년 된 천의장터의 오랜 슈퍼
“등·하교 시간에 물건 팔아도 운영됐을 정도”
미호중 폐교 이어 마트 생기며 손님 발길 끊겨

간판조차 없지만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아는 곳. 40년 넘게 정미면 천의리의 한 장터 골목을 지켜 온 이 작은 슈퍼는 ‘천광사’라고 불린다. 천의장이 당진장보다도 컸던 당시, 한쪽에서 우시장이 펼쳐져 소 울음이 나던 그때에도 천광사는 자리해 있었다. 하지만 장이 점점 축소되고 미호중학교까지 폐교되면서 천의장터를 찾는 발길이 끊겼다. 세월을 비켜갈 수 밖에 없었던 이 슈퍼 역시도 그 끝을 앞두고 있다.

폐교되기 전 학생들로 바글바글

“미호중이 폐교되기 전까지는 학생들이 등·하교하는 아침과 저녁이면 작은 슈퍼가 애들로 가득 찼지. 한 시간씩만 물건 팔아도 그날 운영은 충분했을 정도니깐. 계산하려고 돌아서면 애들이 그렇게 물건을 훔쳐 갔어. 근데 폐교되면서는 그것도 끝이더라고. 또 인근에 마트까지 생기면서 지금은 이도 저도 못 한 신세야.”

대호지면 사성리 출신으로 조금초등학교(38회)를 졸업한 홍효순 대표는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이곳에 터를 잡았다. 이곳에 장사하던 친구가 그만둔다는 말에 농담을 주고받다 덜컥 이곳을 사게 됐단다. 홍 대표는 “친구가 ‘안 한다. 네가 해라’라는 말에 갑작스럽게 슈퍼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함석지붕을 깔아주던 기술을 갖고 있던 남편이 당시 천광공업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여기에서 착안해 이 작은 슈퍼의 이름은 천광사가 됐다. 한때는 함석에 ‘천광사’라고 적어 놓기도 했으나 세월의 흔적으로 사라져 지금은 간판이 없다. 간판 정비사업을 추진할 때조차 간판이 없어 이곳을 빼놓았다.

“손님 오면 좋고 안 와도 좋고”

지금은 하루에 한 명, 때로는 열흘에 한 명 겨우 손님이 찾아온다. 홍 대표는 “손님이 오면 좋고 안 와도 좋다”고 말했다. 발길이 끊긴 천의장터지만 천광사를 찾는 오랜 단골들의 주문이 올 때면 반가울 따름이다. 얼마 전에는 참외 주문이 들어와 두 상자 받아 한 상자는 홍 대표가 갖고, 한 상자는 팔았단다.

한편 40여 년의 세월 동안 많은 것을 일궈냈지만 금방 지나갔다. 그 시간 속에서 슈퍼를 운영하며 자녀들을 키워냈다. 하지만 슈퍼의 간판이 사라지고, 먼지가 쌓인 것 마냥 홍 대표도 나이가 들어 지난해부터는 관절에 이상이 왔다.

올해 3월 수술 예약까지 앞두고 있었지만 정비사업을 하려면 가게를 정리해야 한다는 지자체의 말에 잠시 미뤘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터지고 자꾸만 지연되고 있어 답답하다고. 그는 “운영을 그만둬야 한다고 해서 지난해 겨울 맥주와 음료수를 다 팔고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주며 정리했다”며 “심지어 지금은 카드기까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하루빨리 정리돼야 하는데 아직도 감정가조차 나오지 않아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물건을 새로 놓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장사를 그만둘 수도 없어요. 다리도 머리도 아픈데 그래도 매일 가게에 나와요. 아직 저도 미련 때문에 천광사를 못 놓고 있는 거죠.”

※이 기획기사는 2020년 충청남도 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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