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편집 : 2024-03-18 11:40 (월)

본문영역

  • 인물
  • 입력 2020.07.25 13:51
  • 호수 1317

[세상사는 이야기]
2대째 장례업 잇는 이재웅 장례지도사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사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대 초반에 아버지 뒤이어 장례업 시작
망자의 마지막 길 배웅…“일에 보람 느껴”

▲ 이재웅 장례지도사의 아버지 故 이강열 씨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실제로 죽음 앞에서 의연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가족의 죽음 앞에 남겨진 사람들이 빠르게 슬픔을 이겨내고 장례를 치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 옆에서 장의사가 장례의식을 돕는다.

인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장례지도사인 이재웅(34, 송산면 삼월리) 씨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째 이 길을 걸어오고 있다. 죽음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되는 20대 초반에 일을 시작한 그는 어느덧 장례지도사로서 11년 차를 맞이했다.

장의사로 일한 아버지

장례지도사(장의사)는 상을 당한 유족의 요청에 따라 장례절차를 주관해 장례상담, 시신 관리, 의례지도 및 빈소 설치 등 종합적으로 장례의식을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외삼촌들과 중장비업을 했던 아버지 故 이강열 씨는 아들 이 씨가 15살이었던 무렵에 장례업을 시작했다. 운구차는 당진에서만 운행했지만 장의사로서는 당진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활동했다.

이 씨가 기억하는 아버지 故 이강열 씨는 큰 사람이었다. 지금처럼 장례식장이 없던 옛날에는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그가 중학생 시절 큰 외삼촌 상을 당했고, 외가에서 장례를 치르는데 아버지가 장례를 집도했다. 이 씨는 “이때 아버지가 하는 일을 명확하게 알게 됐다”며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른들 틈에서 아버지가 중심이 돼 사람들을 이끄는 모습에 아버지의 존재가 크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례업 뿐만 아니라 아버지 이 씨는 농업과 어업에도 종사했다. 덕분에 수면시간은 서너 시간밖에 안 될 정도였다고. 자녀들에겐 엄하게 교육했지만 성실한 성격에 주위 사람들이 아버지 이 씨를 좋아했고 인정을 많이 받았단다. 그러나 아버지 이 씨는 지난 2009년 배 사고로 갑작스럽게 아들의 곁을 떠났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슬픔에 잠겼지만 이 씨는 곧 일어나야 했다. 아버지가 고생하며 일궈놓은 일들을 마냥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군 제대 후 그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아버지가 하던 일을 잇기로 했다.

산 사람에게 상처 받기도

방학 때 잠시 아버지 일손을 도운 게 전부였던 그가 본격적으로 장례업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 씨는 “주변에 일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헤쳐나가야 했다”며 “사업을 시작하고 2년여 동안은 당진중앙장례식장에서 먹고 자며 일을 배웠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죽은 사람을 접하는 것도 어려웠어요. 사고사한 시신, 부패한 시신도 봤죠. 아버지 일을 물려받고 부담이 많이 됐어요. 하지만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 밖에 없었으니 두 눈 꼭 감고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어리다고 무시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씨는 “나이가 어리니까 어르신들에게서 ‘어린 놈이 뭘 아냐’, ‘뭐 할 줄 아느냐’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며 “죽은 사람을 보는 것보다 산 사람들 때문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전했다.

“일에 보람 느껴”

일하는 현장 곳곳에는 아버지의 숨결이 닿아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기억하곤 했다. 이 씨는 “아버지가 닦아놓은 곳이나 현장에 가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한편 유족과 함께 죽은 이를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장례지도사는 지난 2012년부터 국가자격증제도가 도입됐다. 이에 그도 국가자격증을 취득하고 장례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기에 누구보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잘 이해한다는 이 씨는 “유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감정이 예민해져 있다”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조심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마음이 유족에게 닿을 때 보람을 느낀다. 이 씨는 “할 일을 하는 것인데 장례를 마치고 아버지뻘 나이의 어르신들이 허리 굽혀 고맙다고 인사할 때면 오히려 감사하다”고 전했다.

“장례식장 운영하고파”

한편 그는 사업 분야를 넓혀 서해장례토탈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장의버스 운영부터 이장·개장, 안장 등 장례에 관한 모든 사항을 담당한다. 주위에서 장례업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선뜻 다가오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장례업을 한다고 말하면 “이런 일을 어떻게 해요?”하는 반응이 신경 쓰였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이 씨는 이 일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지 모르겠다고.

“몇 년 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남, 장손도 아닌 외손자인 제가 외할아버지의 장례를 직접 치렀어요. 그동안 가족들에게 사고뭉치로 인식됐었는데 탈 없이 할아버지의 장례를 마치자 가족들이 철 들었다고 하더군요. 어린 나이에 이 일을 하면서 배운 것도 많고 성숙해졌죠.”

이 씨는 장례지도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일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일을 하면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났고 이 중에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도 있었다”며 “이 일을 통해 인생과 삶의 지혜를 배운다”고 덧붙였다.

“항상 아버지 이름 세 글자에 먹칠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제 또 다른 이름은 ‘이강열의 아들’이기도 하니까요. 11년째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배울 게 많아요. 급하지 않게 천천히 사업을 늘려가고 싶습니다. 훗날 좋은 장례식장을 차리는 게 목표예요. 유족의 입장에서 누군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장례식장을 운영하고 싶어요.”

 >> 이재웅 씨는
- 1987년 송산 삼월리 출생
- 송산초, 송산중, 당진정보고,
   신성대 자동차학과 졸업
- 서해장례토탈서비스(서해 리무진) 대표
- 당진중앙플라워 대표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