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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때문에 고생했지만 ‘당진김’ 알아줬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음섬포구 6 당진시대l승인2020.08.01 14:15l(13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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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들어서면 깔판포구과 더불어 음섬포구에서도 김(해태) 양식을 하는 어민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진에서 삽교천 제방 사이 아산만 일원에서 신평 어민들이 중심이 돼 김 양식장을 조성했다. 김승환, 노이석, 손기호, 손기성 씨 등이 김 양식에 종사했다. 지금도 매산리 곳곳에는 당시 김을 말리고 가공했던 김 양식 창고가 남아 있다. 

노이석 씨 역시 배 사고로 조업을 그만두고 1983년부터 1991년까지 김 양식을 했다. 

“수협에서 융자를 받아 김을 했는데, 잘됐어. 잘 됐는데, 하루 식전에 다 날라가 버리네. 왜냐면 그땐 추워서 섣달 그믐께가 되면, 김 한 두 번 따면 못 해먹었어. 말장 박아 놓은 것이며 뭐며 성에에 떠밀려 나가서, 하나 건지지도 못했지. 그때는 기계도 없고 전부 손으로 김을 땄어. 가위로 베어 오고 그랬지. 김은 잘 되니께 자꾸 확장을 한 거여. 건조기도 놓고.”
김승환 씨 역시 1982년경 김 양식을 시작했다. 

“그때는 성에가 많이 났다고. 성에가 나서 다 떠내려 가버리고 그랬어. 말장도 참나무도 아니고 소나무, 대나무를 써야 해. 그때는 대나무도 귀하던 시절이라 산중으로 나무 사러도 많이 댕겼어. 그걸 사다가 깎아서 말뚝해 놓고 김발을 사다가 김양식을 했지. 어장관리도 노다지 해야 해. 배타고 눈만 뜨면 나가서 올려줬다 내려줬다 해야 한다고. 김을 너무 물속에다만 담가 놓으면 안 되거든.”

성에로 김발을 잃는 고초를 겪긴 했지만, 김 양식은 어민들에게 제법 괜찮은 소득원이었다. 연탄불로 김을 말리던 초창기 이후, 집집마다 건조기를 장만했고 인부를 두고 김 양식업을 확장해갔다. 초창기에는 여자들이 직접 마을을 돌아다니며 판매했으나 곧 수협에서 공판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당진김은 시장에서 좋은 가격에 팔렸단다. 

김승환 씨는 그 이유를 “민물기가 있는 바다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깔판과 음섬포구에서 성한 김 양식은 10년 가까이 지속되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각종 어업 보상권과 맞물리면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우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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