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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당진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

 

지나가는 것들….

가을 하늘, 바람, 호수 너머의 석양, 노트북 건너편에 앉은 마누라가 바닐라 라떼를 호로록 마시는 순간,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짧은 인사, 거의 같은 시간마다 들려오는 노래, 고래 한 마리도 아니고 새우 몇 마리 나눠 먹지 않았다며 옥신각신하는 카카오톡 채팅방의 정겨움, 코로나19에 걸린 미국 대통령, 튼튼한 치아, 녹아내리는 빙하,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위에 올라가 정의를 외치던 대학생, 유엔 회의장에서 울부짖던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 아미미술관 주차장에 빼곡히 들어찬 차량들, 산업폐기물처리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차량 시위, 고향을 비추는 한가위 만월을 담은 카메라 렌즈. 많은 것들이 지나간다.

자동차가 행복한 도로가 아니라 사람이 행복한 도로가 돼야 한다는 캠페인 영상도, 후쿠시마원전 폐수 방류를 막기 위해 서명을 요청하는 그린피스의 광고도, 파워포인트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기후 위기, 코로나19 사태. 그로 인해 곧 닥쳐올 경제 후폭풍을 그저 바라만 보는 사람들이 마트에 거리에 코스모스 앞에 줄을 서 있다.

흘러가는 것들….

사랑, 젊음, 그리고 절정, 생명, 추억, 아름다운 기억, 도랑물에 뱅뱅 몸을 맡긴 나뭇잎, 깔깔거리는 딸들의 표정, “마지막은 아빠 꺼”하며 딸아이가 입에 넣어주는 커피콩 빵, 시간 속에 있는 모든 것, 지속가능할 것 같은 삶, 눈물, 통장에 들어 온 월급, 사업화되지 못한 번뜩이는 아이디어, 파도를 기다리는 모래성, 아련함, <지고이네르바이젠> 바이올린 소리, 풋풋했던 청춘 시절의 낭만, ‘외로운 양치기’의 팬 플룻 소리, 청바지와 수트가 너무 잘 어울린다는 옷가게 주인장에게 셔츠까지 하나 더 달라며 카드를 긁던 호갱 짓, 잘한다 잘한다하는 박수 소리에 용을 쓰며 비틀거리는 한 걸음을 더 내딛는 아기의 벌건 얼굴, 800일을 넘게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국회 앞 건널목에서 신호등만 바라보는 사람들,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며 기를 쓰고 애를 써서 사업주의 수익을 올려주기 위해 지새우는 밤, 음해와 거짓 정보 속에 고통스러워하는 분노,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산다는 착각, 이 모든 것이 흘러가리라.

실재할 것 같지만 한순간도 마주할 수 없는 그 어떤 가치를 좇는 사람들에게마저 모든 것은 지나가거나 흘러간다. 시간 이외의 또 다른 어떤 리듬에 맞춰.

안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허망하고 부질없는 생을 그저 내버려 두는 것은 누구도 단죄하지 않는 범죄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나, 방탄소년단, 트로트 열풍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텅 빈 세상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간다. 먼 길 달려가는 기차 속에서 졸다가, 졸다가 흠칫 고갯방아를 찧은 것처럼 순간 깨어날 기회가 온다 해도 마냥 몽롱하게 일생을 보내고 싶어 하는 저 깊숙한 내면의 종양을 언제 토해낼 것인가?

바로 지금-. 지금이 아니고선 종착역에서 후회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로지 지금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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