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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고대면 성산리의 이병직·노일남 부부
늙은 호박과 노부부

KBS <한국인의 밥상> 출현 지난 22일에 방영
늙은 호박으로 호박지·떡·호박죽 요리 선보여
필리핀 의료센터 설립 등 봉사하는 삶 살아와
한수미l승인2020.10.24 12:52l(13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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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호박은 익어갈수록 단단해지고 묵직해진다. 고대면 성상리 이병직·노일남 부부의 생(生)도 마찬가지다. 올해로 인연을 맺은 지 60년째. 모진 바람과 따뜻한 봄바람을 함께 맞아가며 평생을 살아왔다.

지난 22일 KBS <한국인의 밥상>에 부부의 이야기가 방영됐다. 게젓국을 넣어 익힌 호박지, 찬바람을 맞아 달고 부드러워진 호박고지가 들어간 떡, 따뜻한 호박죽 한 그릇에 담긴 노부부의 삶이 방송으로 전해졌다.

각각의 사연 담긴 음식들
지역의 대표 음식과 숨겨진 이야기, 역사, 문화를 소개하는 <한국인의 밥상> 촬영이 이병직·노일남 부부의 집에서 지난 6일 진행됐다. 촬영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김원호 전 고대면장에게 당진의 음식을 추천해 달라는 연락이 왔고, 김 면장이 <한국인의 밥상> 제작진에게 이병직·노일남 부부를 소개하며 촬영이 이뤄졌다.

▲ ▼지난 22일 KBS <한국인의 밥상>에 방영된 이병직·노일남 부부와 음식의 모습

이날 방영된 각각의 음식에는 나름의 사연들이 있다. 음식이 귀해 배 곯던 시절엔 겉대와 속대 모두 넣어 김치를 담갔다. 손님에게 속대를 내어주고 가족들은 남은 겉대에 호박을 썰어 넣어 끓여 먹던 것이 호박지였다. 노일남 씨는 “호박지는 우리 어렸을 때, 못 먹던 시절에 만들어 먹던 음식”이라고 전했다.

한편 호박고지떡에는 말린 호박고지가 들어간다. 겨우내 서리를 맞으며 녹고 얼고를 반복해야 쫀득하고 달콤한 호박고지가 완성된다. 이병직 씨는 “건조기로도 이 맛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노부부의 생은 겨울을 이기고 맛이 든 호박고지와 닮았다.

호박죽과 무청시래기

노 씨는 젊었던 시절 바삐 살았다. 초대 당진군새마을부녀회장을 맡기도 했고, 고대면 적십자회장에 민주평화통일 당진시협의회 위원 등으로도 활동했다. 또 지난 11년 동안은 뜻 있는 이들을 모아 조청사업단에서 봉사하기도 했다. 바쁘게 활동해 호박죽을 만들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고. 그때 노 씨는 압력밥솥에 찹쌀을 넣고 호박을 올린 뒤 간을 맞춰 푹 익히는 조리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바쁘게 살아서 쉬운 방법을 찾다 만든 나만의 방법”이라며 호박죽을 소개했다.

하지만 빠르게 만드는 호박죽과는 달리, 이날 특별하게 소개된 염장 무청시래기(꺼먹지)에는 정성과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청을 소금에 절여 발효해 볶아 먹는 이 염장시래기볶음은 반찬 같아 보이지만 상에 오르기까지는 꼬박 1년이나 걸린다. 무청의 줄기와 잎이 소금에 절여지는 시간이 다르기에 적당한 조절이 필요하다.

▲ ▼지난 22일 KBS <한국인의 밥상>에 방영된 이병직·노일남 부부와 음식의 모습

한 번 대야에 절이고 다시 항아리로 옮겨 고추씨와 함께 넣어 가을과 겨울을 지나 이듬해 여름에 꺼내 먹는다. 너무 익히는 것도, 안 익히는 것도 문제다. 노 씨는 “적당히가 어려운 법”이라며 “완성된 무청시래기는 들기름과 마늘만 넣어 볶아도 맛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간장과 된장도 직접 만들고, 그보다도 더 많이 사용하는 멸치액젓도 소개했다. 멸치가 나오는 봄에 멸치에 소금을 넣어 절이고 겨울까지 보낸다. 잘 삭힌 멸치를 두 차례에 걸쳐 곱게 거르면 말간 멸치액젓이 만들어진다. 노 씨는 “방송을 통해 우리의 살아온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보람있고 감격스러웠다”며 “마치 꿈만 같다”고 말했다.

▲ ▼지난 22일 KBS <한국인의 밥상>에 방영된 이병직·노일남 부부와 음식의 모습

끝없는 부부의 봉사 일지
한편 음식 말고도 그들의 봉사 이야기는 끝이 없다. 이병직 씨는 고대면 장항2리 고향을 떠났다가 6.25전쟁이 터지면서 고향 당진으로 피난와 정착했다. 이후 교직 생활을 하며 석문중학교에서 1999년 퇴직했다. 퇴직금 3000만 원으로 필리핀 민도로에 의료센터를 지었다.

그 이후부터 줄곧 봉사를 이어왔다. 아프리카 우간다에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급수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돕고, 네팔에는 한 마을에 병아리 2000마리를 기부해 자립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봉사처를 관리할 네팔 청년 매니저를 뒀으며, 매니저가 자립할 수 있도록 빵집을 지어줬다. 한 번은 당진으로 초청해 빵 만드는 기술도 알려줬다고.

▲ ▼지난 22일 KBS <한국인의 밥상>에 방영된 이병직·노일남 부부와 음식의 모습

노 씨가 함께한 조청사업단도 지난 10년 동안 수익 모두를 어려운 이들에게 기부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세상을 보게 해 달라며 3000만 원을 안과에 전하기도 했다. 이병직 씨는 “돌아보면 내 힘으로 봉사를 한 게 맞나 싶을 정도”라며 “재력도 없는데 봉사한 것을 보면 오히려 신기하다”고 말했다. 부부는 “앞으로도 일거리가 들어오면 즐겁게 일하고 사람들을 도우면서 아프지 않고 생을 감사히 여기며 살고 싶다”고 전했다.

 


한수미  d9111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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