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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하며 살아온 한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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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적십자 활동에 뛰어들었다. 평생을 봉사해야 할 자리가 있으면 마다하지 않았던 건 늘 이웃과 더불어 사셨던 친정어머니를 많이 닮은 탓이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내 힘과 시간을 나눴지만 얻은 보람이 더 크다. 그래서 혹자는 “봉사자는 남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일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던 걸까.

1. 이웃도 나도 모두 한 몸
첫 번째 사진은 1978년도 삽교호에 자연환경 캠페인을 하러 나갔을 때다. 적십자의 전신인 ‘부녀봉사대’는 여성으로만 조직된 단체였다. 당시에는 지금의 노란 적십자 조끼가 아니라 상아색 줄무늬 셔츠를 유니폼으로 입었다. 가족 같던 단원들이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네 것, 내 것 구분 없이 서로를 돌봐주곤 했었다. 이웃도, 나도 모두가 한 몸이다.

  
2. 1985년 대만
이 사진을 찍은 곳은 대만이다. 당진군새마을협의회장을 하던 때였는데 전국 협의회장단 연수로 대만 백화점을 비교, 분석하러 갔다. 이때만 해도 대만은 한국보다 훨씬 경제 발전이 뒤쳐진 상황이었다. 해외 교류가 많지 않던 1985년 당시에는 거리에서 “일본인이냐”고 묻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 우리는 당당히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며 한국을 알린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고는 했다.
  

3. 잔치음식 줄여 차리기 운동
1990년대 중반 적십자에서는 ‘잔치음식 줄여 차리기’ 운동을 벌였다. 이 사진은 당시에 부녀상담소장의 딸 결혼식을 도왔을 때 찍은 사진이다. 한국인 정서상 푸짐하게 음식을 내놓다 보니 너무 많은 음식이 버려지는 게 안타까워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함께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4.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녀
마지막 사진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둘째 손녀다. 태어난 지 100일이 채 안됐을 때다. 손녀가 생긴 후 어머니의 사랑과 할머니의 사랑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책임감을 함께 지는 부모의 사랑과는 다른 그야말로 온전한 사랑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손는 아직도 할머니인 나를 잘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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