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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 입력 1995.06.21 00:00
  • 호수 87

87호(1995.6.21)특집기사/드디어 빛보는 대호지 4.4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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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빛보는 대호지 4.4운동



올해 관련자 50여명 무더기 훈,포장

주모자 유생 남주원씨에는 건국훈장애족장



광복 50돌을 맞은 올해 당진군에서는 군내에 주소를 둔 독립유공자 34명과 타지역에 주소를 둔 당진군 독립유공자 20명등 모두 54명이 독립유공자 훈쪾포장을 받았다.

이들 대부분은 1919년 3.1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독자적으로 일어났던 4.4독립만세운동 관련자들로서 이들은 75년여만에 역사의 그늘속에서 비로소 밝은 빛을 보게 되었다.

광복 50돌을 맞은 지난 15일 표창을 받은 이들 가운데는 이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학생운동 주모자 박희남씨와 1905년 을사보호조약에 반대해 의병투쟁을 일으켰던 면천출신 의병대장 최순돌씨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 중 생존자 박희남(80세)씨는 1930년대 예산농업학교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좧독서회좩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서적을 돌려 읽었다는 이유로 좌익사상범으로 몰려 일본경찰에 체포돼 투옥되었던 장본인이다. 박씨는 이 좧예산비밀독서회좩 사건이 발생한지 65년만인 올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당진군에 주소를 두고 있지 않아 정확한 사정이 알려지지 않은 최순돌씨에게도 이번에 건국훈장애족장이 주어졌다.

올해 독립유공자 표창에서 더욱 뜻깊은 일은 대호지 4.4운동의 주모자중 한사람이었으나 유족을 찾지 못한 어려움으로 그동안 상신이 미뤄졌던 유생 남주원씨가 위의 두사람과 함께 건국훈장애족장을 나란히 수상한 점이다.

남주원씨는 1919년 고종황제 인산을 계기로 당진의 유생, 남상락, 남상돈, 이춘응씨 등과 함께 2월 27일 상경, 사대문안에서 부복통곡하여 선비의 예를 다하고 3.1 파고다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귀향하여 4.4운동을 전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만해 한용운, 남정, 김좌진 지사등과 교분이 두터웠다고 전해진다.

이밖에 다른 표창자들은 직간접으로 대호지 4.4운동에 관련된 사람들로서 모두 이번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당시 판결문이

결정적인 사료



그러나 1989년 추모행사를 위한 비용 50만원을 군비에서 보조받기까지 이 운동은 군과 정부로부터 명실상부한 독립운동으로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정성환 면장과 구장회 군수 당시, 예산배정과 함께 비로소 거군적인 독립운동으로 대호지 선열추모추진위원회가 조직되어 기념일을 의거가 있었던 4월 4일로 결정하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이보다 앞서 86년에 결성된 대호지 4.4독립만세운동 선열유족회의 역할이 컸다. 역사적인 발굴작업 대부분이 유족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1982년에는 유족 남만우씨가 정부기록보존소 부산지소에서 경성 복심법원 판결문을 찾아냈는데 이는 구전으로만 알려졌던 대호지 독립운동사의 역사적 맥을 찾는 결정적인 사료가 되었다.

또 그해에 남씨가 언론에 일체의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대호지 독립운동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대호지면에서는 유족회 주최로 이때부터 87년까지 면내 국민학생과 노인들을 모시고 3.1절 행사의 맥을 이어갔다.

그뒤 유족 남기호씨가 대호지면사무소에 보관된 일제때 수형인 명부를 통해 관련자들의 수형내용을 찾아냄으로써 이 작업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추모행사는 고 남창우 전 대호지면장이 60년대부터 명절에 송봉운 열사의 묘소에 헌작하던 것에 시효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1971년에는 남면장과 면민 다수의 발기로 추모비 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72년에는 당시 생존지사 남상은씨등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면내에 추모비가 건립되었다.

한편 당시 이 운동에 참여했던 5백73명의 위패가 현재 조금리 창의사에 모셔져 있으며 89년에도 기념사업회가 발족돼 올해 천의에 웅장한 기념탑을 세우기도 했다.



4.4운동의 전모요약



고종황제 인산(因山)때에 참례하기 위하여 상경하였던 남주원, 남상락등 5명의 애국지사들은 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거사된 3.1독립운동에 참가한 후, 우리 고장에서도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태극기 1매와 독립선언문 1통을 얻어가지고 귀향하였다.

고향에 내려온 이들은 비밀리에 4월 초순, 대대적인 봉기를 계획하고 구체적인 결의에 들어갔다.

또한 이 독립운동 추진위원회는 거사 일자를 대호지와 정미면 천의 장날인 1919년 4월 4일로 결정하였다.

특히 이인정 면장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면사무소 서기 김동운, 강태원씨 등은 주민을 규합하기 위해 「도로수선 병목정리의 건」이란 제목의 문서를 작성하여 구장(당시 이장)들에게 전달, 면민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4월 4일 아침이 되자 600여 면민들이 면사무소 광장에 모여들었고 군중 앞에 선 이인정 면장은 “오늘 모임은 도로수선이 목적이 아니고 조선독립을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니 이에 찬동하는 분은 정미면 천의시장으로 향하자”는 요지의 연설을 했다. 이에 주민들은 면장의 연설에 환호하며 독립만세를 외친 후 거대한 태극기를 앞세우고 정미면 천의시장으로 향했다.

이들은 미리 제작한 태극기 400여매와 직접 작곡한 애국가가 인쇄된 유인물을 배포하고 주민들의 만세운동참여를 적극 유도했다.

하지만 이러한 질서정연하고 비폭력적인 만세운동은 일본경찰이 태극기를 강제로 빼앗으려 하자 폭력사태로 번졌다. 항거하는 군중을 향해 일본경찰이 공포를 발사하자 이들은 천의 일본주재소를 점거하고 일본경찰을 무장해제 시켰다.

1차 만세운동을 성공적으로 끝낸 마을주민들과 유생들은 2차 만세운동을 모의하였으나 강화된 일본경찰의 수비로 인해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 그후 계속되는 일경의 검거바람은 1920년 10월까지 계속되어 무고한 수많은 면민들을 체포, 구금했다.

이로 인해 검거당시 송봉운씨는 사살됐고, 이달준씨 등 3명이 옥사하는 등 수백 명의 면민들이 고초를 겪었다.





광복 50돌에 본 당진의 독립운동



1919년 3.1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당진군 대호지면에서 독자적으로 일어났던 대호지 4.4독립만세운동은 유족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대내외에 알려지기 시작해 지금까지 39명의 관련자가 각종 훈쪾포장을 받은 것을 비롯, 광복 50주년을 맞은 올해에는 50여명이 추가로 국가적인 유공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이 운동에 대한 발굴작업의 현황과 당시 사건의 전모, 유공자 현황등을 살펴보고 아울러 발굴작업에 남달리 애를 쓴 대호지 4.4독립만세운동 선열유족회 남기호 부회장을 만나본다.

/편집자 주/



<광복 50돌 훈쪾포장을 받은 인물들>



■당진관내에 주소를 둔 이들

박희남 당진읍 우두리 학생운동 건국훈장 애족장

최연식 대호지 장정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최학수 대호지 승전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이영학 정미 매방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이대성 대호지 송전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이상영 정미 천의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임억규 대호지 사성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정환철 대호지사성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김길동 대호지 도이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김범준 대호지 두산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김봉국 대호지 두산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김부식 대호지 두산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김순식 대호지 두산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김홍태 정미 승산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남성희 대호지 장정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남인우 대호지 도이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문만동 대호지 도이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조정식 순성 본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조회식 대호지 장정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박성운 대호지 송전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박희천 대호지 조금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백성일 대호지 사성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손병윤 고대 진관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송준기 대호지 도이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심능필 대호지 마중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차세순 대호지 조금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천학선 대호지 사성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김일롱 대호지 두산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김장성 대호지 두산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김장식 정미 천의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김천겸 대호지 장정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김홍수 대호지 두산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김홍우 대호지 두산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김홍진 대호지 두산리 태형 90도 대통령표창

■당진관내 미거주자

남주원 서울 양천구 징역 1년 건국훈장애족장





<94년까지 훈쪾포장 받은 관련자>



성 명 주 소 수형내용 서 훈 내 용

고수식 사성리 징역1년 1990 건국훈장 애족장

고울봉 적서리 징역1년 1983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권재경 마중리 징역1년 1990 건국훈장 애족장

권주상 적서리 징역1년 1990 건국훈장 애족장

김금옥 조금리 징역1년 1986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김길성 적서리 징역1년 1990 건국훈장 애족장

김부복 적서리 징역1년 1983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김장안 사성리 징역1년 1990 건국훈장 애족장

김찬용 장정리 징역1년 1986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김팔윤 사성리 징역1년 1986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김형배 사성리 징역1년 1990 건국훈장 애족장

남기원 송전리 징역1년 1990 건국훈장 애족장

남상돈 도이리 징역8개월 1986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남상락 도이리 징역8개월 1986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남상은 도이리 징역8개월 1986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남상직 도이리 징역1년 1983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남상집 도이리 징역8개월 1986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남성우 도이리 징역8개월 1990 건국훈장 애족장

남용우 도이리 징역1년 1986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남윤희 도이리 징역8개월 1990 건국훈장 애족장

남 정 도이리 징역1년6개월 1986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남태우 사성리 징역1년 1986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민재봉 송전리 징역1년6개월 1980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송무용 사성리 징역1년 1990 건국훈장애족장

송봉운 사성리 현장순국 1986 대통령표창-1990 애국장

송봉숙 도이리 징역1년 1986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송재만 조금리 징역5년 1977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신태희 사성리 징역1년 1990 건국훈장 애족장

안상춘 사성리 징역1년 1990 건국훈장 애족장

원순봉 송전리 징역1년 1990 건국훈장 애족장

이달준 송전리 옥중순국 1990 건국훈장 애국장

이대하 장정리 징역8개월 1990 건국훈장 애족장

이완하 도이리 징역1년 1990 건국훈장 애족장

이인정 사성리 징역1년 1983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이춘응 두산리 징역1년 1983 대통령표창-1990 애족장

전성진 도이리 징역1년 1990 건국훈장 애족장

최정천 송전리 징역1년 1990 건국훈장 애족장

한운석 조금리 징역1년 1990 건국훈장 애족장

홍월성 조금리 징역8개월 1990 건국훈장 애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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