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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
  • 입력 2020.11.28 14:24
  • 호수 1333

당진의 유제 군수 이야기 13
관청 박해로 피해 입은 교회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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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완 당진시 기독교역사문화교육위원장/탑동감리교회 원로목사

이규갑은 병정 50명을 데리고 1897년 10월 24일 홍주에 당도하였다. 덕산 수촌에 사는 조원식은 관예에게 구타 당하며 덕산군수 조종서에게 끌려가 문초를 당했는데 조원식은 덕산군수에게 “본 군수 도종서를 보고 무슨 죄로 잡아온 곡절을 무르니 군수의 말이 그대의 무죄함은 내가 이미 염탐하여 자세히 아는 바로되 관찰부에서 여러 번 그대들을 잡으라는 훈령이 왔기로 내가 방보하너 하고 저히가 여러추이 들었노라”하고 관찰부의 훈령을 내어 보였다.

그 훈령에는 “류제 등이 셔교를 칭탁하고 성군작대 하여 부자의 전곡을 억탈하며 군수와 관찰사도 무섭지 안타하며 비리의 송사를 천단이 행하니 약차한 당을 멸함이 맛당한 고로 병정을 보내니 류제사는 동리를 몰수히 뭇질으라 한라”라고 쓰여 있었다.

이때 덕산에 사는 동네사람들이 이 사안에 대하여 일제히 일어났다. “이때에 본읍양반 이명우씨들과 이배들이 일제히 말하되 무죄한 동리 사람들을 토벌하는것이 민간에 지원하는 일이오 국가의 대번이라 상영 분부가 암만 지엄하여도 깊히 샹량하여 조처할 일이라”하고 덕산군수에게 말하니 덕산수의 말이 나도 또한 이미 생각하였다고 하여 유제 일행의 복음전도에 어떤 불손한 일이 없음을 밝혔다.

그리고 이튿날 덕산군수는 조원식을 친히 데리고 홍주읍에 가서 홍주군수 정운경을 만나 “무죄한 사람들을 죽이라고 경군을 나려오게 한것이 무슨 까닭이뇨 조원식을 내가 다려왔으니 불러 사실하라”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홍주군수 정운경이 “나는 도무지 모로겠다 하기로 덕산군수 도종서씨가 또 말하되 네가 모론다 하면 나는 언제아는 일이냐 하고 즉시 조원식을 보내는지라” 결국 유제와 기독교인들의 잘못을 선동하며 누명으로 군사들을 보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과오를 찾지도 못하고 박해만 했다는 것이 반증었다.

다음날 조원식이 덕산읍에 들어갔더니 이규갑이 병정 13명을 거느리고 와서 덕산군수 조원식에게 “관찰사의 말이 홍주와 대구와 덕산등지에 란당이 진을 쳤으니 병정 50명을 거느리고 토멸하라 하더니 각 고을에 한곳도 진친데가 없고 사방이 안연하니 가히 한심한 일이라 하고 서산 태안등지로 가는지라” 라고 당시의 관공소의 잘못된 정황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모르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간단하지 않았다.

“이때에 류제씨 사는 동리 사람들은 병정이 뭇질으러 온다는 소문을 듣고 남녀들이 서산분주하고 이성집이라 하는 사람은 서울로 도망하다가 중도에셔 객사하였더라”

이러한 관청의 박해 사실은 조원식씨가 신문사에 편지하여 1897년 11월 13일자 독립신문과 1897년 11월 24일 자 조선그리스도인회보에 보도되었다. 관청의 박해로 인하여 덕산지역에 유제와 조원식에 의하여 설립된 교회공동체들은 큰 피해를 받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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