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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0.11.28 15:22
  • 호수 1333

[독자의글] 이인학 호수시문학회 회원
누룽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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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에 누룽지 닥닥 긁어서 개똥이도 한 주먹 금순이도 한 조각”

옛날부터 누룽지에 대해 전해오는 속요다. 부엌의 커다란 가마솥에서 밥을 푸면 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를 쇠로 된 주걱이나 부엌칼로 북북 긁으면 알맞게 타다 눌어붙은 누룽지가 나온다. 이 누룽지야말로 어렸던 시절에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주전부리 감이었다. 쌀이 부족하던 시절인지라 누룽지도 간식 이전에 주식으로 활용했다.

누룽지를 긁지 않고 물을 부으면 눌은밥이 되고 또 숭늉이 나온다. 눌은밥을 얻어먹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위장이 약하거나 이가 시원찮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먼저 잡수셨고 어른이 행여 마다하면 아버지나 손위 사람의 몫이었다. 그래서 눌은밥을 만들기보다는 누룽지로 긁는 것이 집안의 아이들에게 돌아갈 확률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가 나쁘거나 빠졌거나 하신 어른들은 누룽지가 맛은 있어도 먹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룽지를 아끼고 아끼다가 몇 날이 지나면 젊은이들도 깨물어 먹기 어려울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때쯤이면 어른들의 몫이 아니고 자연히 아이들의 몫이 된다. 이빨로 깨물어 몇 점을 입에 넣고 한동안 씹으면 바로 또 고소하고 구수한 맛이 되살아난다.

또 다른 변신으로 누룽지들 바싹 말려 잘게 부순다. 잘게 부순다고 쌀알이 각각은 아니다. 두서너 개씩 붙어서 부서진다. 이것을 뻥튀기 기계에 넣고 돌리면 누룽지 뻥튀기가 되는 것으로 이 뻥튀기 맛 또한 일품이다. 누룽지를 뻥튀기해야 비로소 아이들의 몫이 되고 마을 또래의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이 숭늉이다. 이 숭늉의 구수한 맛은 일품이다. 밥이 덜 눌었을 때는 숭늉이 희끄무레하지만 바짝 눌면 검은빛이 돌고 마시고 나면 씁쓸한 뒷맛이 남기도 한다. 그러니 숭늉의 참맛은 이 씁쓸한 데 있다. 숭늉이야말로 우리의 대표적 음료로 밥을 먹은 뒤 반드시 이것을 마셔야 식사가 끝나는 것으로 여겼다.

밥과 찬을 먹다가 끝날 때 숭늉이 대접을 국그릇 자리에 올리면 밥을 한 술 말아서 개운하게 먹고 수저를 제자리에 놓는 것이 임금 수라상의 예법이었다. 이는 또한 식기에 밥알이 말라붙지도 않거니와 설거지를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 탄생된 누룽지는 보관식품으로 또는 간식으로 활용된 대표적인 식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쇠솥이 없어지면서 양은솥이 나돌고 또 그 위에 전기밥솥이 퍼지면서 누룽지와 숭늉은 구경조차하기 어렵다. 다만 요즘 일부러 누룽지를 만들어 판매하고 이를 바탕으로 눌은밥과 숭늉을 내놓고 변칙이 생겨나고 있다. 한때는 이 누룽지를 동남아에서 수입도 했었다. 전문적인 누룽지 공장도 생겼다.

이처럼 누룽지 수입과 전문 공장이 생긴 것은 우리들의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우리의 맛, 결코 다른 음료수가 흉내 낼 수 없는 우리의 깊은 맛이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위로해 본다. 오늘도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그 손맛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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