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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
  • 입력 2020.12.14 11:25
  • 호수 1335

당진의 유제 군수 이야기 15 마지막 회 “참 환난에서 우리 마음을 연달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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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완 당진시 기독교역사문화교육위원장/탑동감리교회 원로목사

덕산 기독교공동체에 위기가 닥쳤다. 유제가 서울 고등재판소 검사 함태영에 의해 죄인의 신분으로 억울하게 서울로 압송되므로 더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다.

독립신문 1899년 3월9일자에 보면 당시에 대한 짧은 기사가 있다. “전 면천군수 유제씨를 무슨 사건으로 고등 재판소에서 잡아 올려 오는지 중도에서 유제씨가 병이 나서 말이 못되어 거지 사경인 고로 며칠 건치가 된다는 말이 잇더라”

이후의 유제에 대한 기록은 없다. 최병헌과 박환규는 조선크리스도인회보 1987년 11월3일자에는 유제와 덕산교회의 핍박을 전해주면서 격려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어느 나라던지 어느 지방이던지 예전이나 지금이나 착한도를 비방하고 어진 사람을 군축하는 것이 업을수 업는바요 면하기 어려온 일이로되 교중 형제들은 매양 환난을 당하거든 성심으로 기도하여 구세주를 믿는 마음 더옥 견실하면 전능하옵신 하나님깨서 우리 마음속을 세세이 살피사 믿는대로 우리를 구하여 주실거시니 참환난에서 우리 마음을 연달함이라”

복음전하는 자들에게 이 얼마나 든든한 위로인가? “참 환난에서 우리 마음을 연달함이라”

마치는 글 <멜기세덱의 반차>
면천군수 유제를 연구하면서 자료의 한계를 절감했다.

특별히 그의 탄생과 마지막에 대한 기록을 찾을 길이 없었다. 강릉 유씨 종친회 각 종파 사무실을 전전했으나 그의 기록은 아는 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고종실록과 승전원일기, 각사등록 등 각 지역 사록에서 찾았다.

조선 크리스도인회보와 독립신문을 통해 기사화된 그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흘려보내기엔 너무 소중한 자료였다. 그러기에 잊고 지나갈 수 없는 것이 당진기독교인의 사명감이었다. 그가 활동했던 1890년부터 1899년까지의 기간은 한국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우리에겐 보고(寶庫)처럼 잊혀질 수가 없었다. 그의 삶은 한마디로 “아브라함 시대의 멜기세덱”과 같다면 오판일까? 창세기 아브라함시대 멜기세덱은 살렘왕이며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창14:18)

이 멜기세덱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히7:2~3/ 첫째로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정의의 왕이라는 뜻이고 그 다음 살렘 왕이라는 칭호는 평화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으며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이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서 영원히 사제직을 맡아보는 분입니다.(공역)”

유제의 생애 가운데 시작과 끝, 아버지와 어머니 등 족보도 알 수 없었다. 아직까지 후손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다만 당진 면천땅에 베푼 하나님 공경과 이웃사랑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선한 사마리아인의 간증만 빛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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