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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성구미포구 1 허기져서 ‘허기고개’, 갯구랑이 왔다갔다 ‘갯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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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의 아름다운 포구, 성구미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성구미 앞바다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건져 올리던 어민과, 유쾌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포장마차의 정 많던 상인들은 모두 성구미를 떠났다. 그러나 고향 마을을 잃어버린 주민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아름답던 그 시절의 기억이 또렷이 남아 있다.

송산면의 최북단 곶에 위치한 성구미포구는 예부터 남양만에 연하여 다양한 어종이 나고 고깃배들이 정박하기 좋았던 송산의 대표 포구였다.

“이 동네 한 번 따져 볼텨? 우리 1반은 도랑운과 허기고개여. 허기져서 허기고개라고 했어. 운말, 양지말, 음지말, 갯구덕, 그때 바닷물이 거까지 들어와서 갯구랑이 왔다갔다 하니께 갯구덕이라고 했다고. 그 다음에 창말은 창고가 지어져 있어 곡식을 거둬다 가져간데랴. 여 꼭대기가 창말이여. 넙덕살, 동안이, 신영개, 목벌, 해변말, 목고개, 고미, 꺼먹고만이, 시루지. 비둘기구녕이라는 데가 있고. 말무덤, 그 다음에 목너머, 큰골제, 작은골제, 성구미. 그러고 강뿌리, 새말애, 마당배, 뭐 삼봉. 그게 전부 굴바닥, 석화장이었지. 그 저기 살 맨 데가 있었어. 삼봉살이 있었고. 복희살 있었고 갯섶살이 있었고. 이렇게가 가곡리 자연부락이여.”

정치웅 노인회장은 마을을 한 바퀴를 돌 듯, 단숨에 자연부락의 옛 지명을 풀어 놓았다. 가곡리에서 나고 자란 그는 지난 80년 동안 고향의 무수한 변화를 직접 목격해왔다.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설 때도, 현대제철 당진제철소가 들어설 때도 앞에 서서 주민들과 함께 마을을 지키려 애썼다. 정치웅 씨는 1941년 가곡리 1반에서 태어났다.

“그때 당시에는 뭐 부엌 하나, 방 하나인 초가집들이었지. 마을도 조그맸어. 배들도 별로 없었고. 그러다 강화 사람들이 준치 잡으러 한 70척이 왔다고. 여기 와서 준치 잡아서 팔고 그랬지. 그때는 막걸리 파는 집도 굉장히 많았어. 실제 사는 주민들 집보다 주막이 더 많았어.”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우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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