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칼럼
  • 입력 2020.12.16 10:23
  • 호수 1334

[기고] 김영한 당진학교수협의회장
당진항만공사 명예홍보대사민속놀이 연(鳶)의 철학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은 나 자신이다. ‘생’이고 ‘혼’이라고나 할까? 너무 과장된 표현이 아닌지도 생각된다. 연은 옛날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던 놀이이다. 연은 바람을 타고 날리는 사람에 의해 날고 춤추고 즐기는 모습이 인생의 과정이자 나의 삶과 같다고나 할까.

연을 관찰하면 직사각형의 종이에 다섯 개의 대나무 살과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바람이 통과하고 있다. 나는 연을 이렇게 해석해 봤다. 연의 몸통은 ‘나의 육신’이고, 좌우의 줄은 ‘부모님’이고, 가운데 줄 즉 3각형 줄을 ‘동반자, 부부’다. 이로써 줄은 ‘나의 혼’이고 또한 ‘나의 친구, 삶에 함께하는 사람들’이라고 할까. 그리고 그 몸통과 줄을 움직여 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고 보면 참으로 연은 훌륭한 지혜와 철학이 담겨 있는 최고의 작품인 것 같다.

한편 앞으로 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연의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이다. 즉 신라의 진덕여왕 1년(서기 648년)에 이미 연날리기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또한 고려시대의 최영(崔瑩) 장군이 제주도를 정복할 때에 연을 활용했다는 설도 있다.

‘전통 방패연’은 가운데 바람구멍이 있어서 바람이 약하거나 강할 때도 날릴 수 있으며, 하늘을 전후좌우 자유자재로 날릴 수 있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연이다. 이러한 옛 선조들의 과학적인 연 제작의 발상은 우리 민족의 슬기와 지혜를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옛 문헌을 보면, 우리 나라에서는 초기에 연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사용한 ‘전술비연’이다. ‘충무공 전술비연’은 오늘날과 같이 무전기나 무선통신 등이 없었던 시기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과 함께 왜적을 물리치는 데 통신 및 암호 수단으로 사용했던 일종의 신호 연이다.

현재 총 55종의 문양과 그 뜻이 전해 오고 있는 전술비연은 각각 문양마다 다른 암호를 넣어 작전명령 전달을 위해 쓰였다고 한다. 서로 연락하는 통신수단 및 작전을 지시하는 전술신호와 암호수단으로 사용한 예를 볼 때 우리는 더 한층 우리 겨레의 지혜와 슬기를 엿볼 수 있다.

영조대왕 때(1724년)에는 연은 궁 안에서만의 놀이였다. 궁안에서 청·홍으로 편을 나누어 연을 날렸고, 이후 동네마다 백성들의 화합을 위해 연날리기를 적극 장려한 바, 농한기 때인 음력 12월부터 연 날리기를 시작하여, 그 절정인 정월 대보름날에 ‘액막이연’을 날려보냄으로써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연 날리기를 끝으로 농사준비를 하였다고 한다.

연 날리기는 옛날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겨울철 민속놀이의 하나였지만, 지금은 현대놀이 문화의 발달과 컴퓨터 전자오락문화 등으로 쇠퇴해 왔다. 옛날에 가장 많이 연을 날리는 때가 바로 설날에서부터 정월대보름까지이다. 특히 보름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자기의 이름과 생년월일시를 써서 하늘 높이 날린 후에 연줄을 끊어 하늘 끝까지 한없이 날아가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은 바로 그 해에 자기에게 다가올 액운을 연과 함께 날려버려, 아무 탈 없이 무병하고 행복한 한 해를 보낼 수 있다는 아름다운 우리의 풍속으로서 ‘송액’ 또는 ‘액막이연’이라고 불렸다.

이런 좋은 연을 볼 때 참으로 우리 생에 참 좋은 교육과 지혜를 안겨준 ‘연(鳶)’을 다시 한번 생각 보게 하지 않는가? 이번 겨울에는 연을 넓은 들판에서 가족과 함께 날려 봄이 어떨까 한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