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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1.01.04 10:27
  • 호수 1338

[칼럼]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응답하라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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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을 자주 말한다. 그 해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걸까? 내 기억 속의 1999년은 바른지역언론연대가 출범한 후 언론개혁운동을 활발히 하던 때이다. 당시 나는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간사였다. 그해 한국전쟁 시기 미군에 의한 노근리 민간인 학살이 AP통신에 보도되며 커다란 사회적 충격을 주었다.

당시 월간 <말>지 기자였던 오연호 기자의 책 <노근리 그 후>는 1999년의 한 장면으로 남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면인, 베트남전쟁에 간 한국군에 의해 무고한 베트남인이 희생되었다는 한겨레21의 보도는 노근리가 베트남에도 있었다는 걸 확인시켜주었다. 피해자가 한국 민간인에서 베트남 민간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베트남 민중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합니다-한국군 양민학살 진상규명과 한국정부의 공식사과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850명 공동선언"은 우리가 몰랐던 ‘베트남의 노근리’에 사죄하는 한겨레신문 광고에 연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내 기억 속 1999년의 장면들이다.

한겨레21 보도 후 ‘미안해요 베트남’ 캠페인이 생겨났다. 시민들의 성금으로 베트남에 ‘한베평화공원’이 만들어졌다. 베트남 피해자들의 상처와 고통을 위로하고 가해의 역사를 성찰하는 움직임이 면면히 이어졌다. 그 후로도 시민들의 사죄와 평화교류는 이어졌으나 국가 차원 진상규명과 사과를 위한 노력은 없었다. 진상규명 과제를 안고 지난 2016년 한베평화재단이 출범했다. 재단은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과 함께 베트남전쟁 피해자와 피해마을에 대한 추도사업과 지원사업, 장학사업을 추진하고 기억, 기록사업과 평화교육사업을 벌이고 있다.

2015년은 다시금 1999년의 기억을 불러온 해이다. 한국군에 의해 가족을 잃고, 살아남아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았던 베트남 피해자 두 명이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응우옌티탄과 응우옌떤런이 그들이다. 1966년 한국군 최대 학살로 알려진 빈안학살 피해자 응우옌떤런은 지난 11월 7일 병환으로 타계했다. 그는 고자이 위령비 앞에서 매년 열리는 위령제에 참석해 한국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연설을 했다. 그의 죽음을 전해 들은 응우옌티탄은 눈물을 흘렸다. 안타까웠다. 두 사람이 한국을 방문한 2015년의 기억으로 거슬러 가 본다.

당시 베트남전 한국군 피해자의 최초 방한에 한국 언론의 관심이 높았다.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반응도 거셌다. 2000년 한겨레신문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하던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의 모습이 다시 재현됐다. 군복을 입은 그들은 ‘응우옌떤런은 베트콩이다’라고 적은 현수막을 들고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 싸웠다.

1999년으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과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베트남 피해자 103명이 한국 정부의 진상규명 노력과 책임 있는 사과를 요구하며 청원서를 제출했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베트남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한국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관련 자료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등 진상규명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로 시종일관 이 문제를 관망하고 있다.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에 대해 진상조사하고 사과하는 것은 단지 베트남 피해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정부가 진상규명 활동에 뒷짐지고 있는 사이 전쟁의 기억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깊어지고, 수많은 베트남 참전군인은 전쟁범죄의 가해자가 돼버렸다. 국가폭력에 동원된 또 다른 피해자인 참전군인을 위해서도 정부는 진상조사에 나서야 한다. 국가가 나서 베트남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참전군인의 삶까지 돌아봐야 한다. 국가는 이제라도 1999년부터 시작된 진실을 향한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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