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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당진시장애인체육회 전승훈 생활지도사
휠체어로 세상을 향해 내딛다

아내와 함께 부부 휠체어 스포츠댄스 국가대표로 활동
의정부에서 울산까지 600km 휠체어로 종주하기도
“당진에 장애인 위한 스포츠 시설 생겼으면”
한수미l승인2021.01.08 19:58l(13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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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몸이 불편했던 전승훈 씨는 체육 시간이면 몸이 불편하니 교실에 남아 있으라는 ‘배려’를 받았다. 그는 운동장을 누비며 축구하는 친구들을 창문 너머로 바라봤다. 나가고 싶었다. 그는 움직일 수 없는 다리 대신 휠체어를 타고 교실 문밖으로 내디뎠다. 그때의 작은 움직임이 그의 삶을 이끌었다.

“순간이 지금을 만들어”
걷기 시작할 무렵 열이 펄펄 나기 시작했다. 병원을 찾아 급히 열을 식혔지만 다리는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소아마비로 인한 지체장애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뛰지는 못해도 철봉에 매달리고 물구나무는 설 수 있었다.

나중에는 물구나무로 운동장 반 바퀴를 돌 정도로 근력을 키웠다고. 운동에 재미를 붙인 전 씨는 서울 광진구에 있는 장애인재활복지관 정립회관에서 다양한 스포츠를 섭렵했다. 사격부터 좌식 배구, 탁구 등 두루 배우고 활동했다.

만약 그때 교실 문밖을 나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는 “그 순간이 지금의 내 삶을 만들었다”며 “시키는 대로 교실을 지키고 있었다면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인권 운동 나서
전 씨는 장애인 인권 운동에도 눈을 돌렸다. 그는 “장애인 인권과 복지가 좋지 않았다”며 “놀림의 대상이 되는 건 일상이었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 존재였다”고 말했다. 장애인도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찾기 위해 모임에 가입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88올림픽을 마치고 1990년대 들어서 장애인 처우가 나아지기 시작할 무렵 그는 다시 스포츠계로 돌아왔다.

“장애인으로 살기 열악했죠. 올림픽 종목에 맞는 휠체어도 없어서 그 무거운 병원용 휠체어를 끌고 훈련하고 육상, 마라톤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어요. 장애인 인권에 목소리 내는 협회나 단체도 없었고요. 10년 동안 장애인 인권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다 체육 활동이 다시 하고 싶어 돌아왔어요.”

휠체어 마라토너로
다시 시작한 것은 육상이었다. 경기도 의정부에 살면서 6년 정도를 장거리 달리기를 거쳐 마라톤 선수로 활동했다. 지난 2006년에는 의정부에서 울산까지 1500여 리를 종주하는 마라톤에 출전했다. 당시 내달린 거리는 무려 600km로, 하루에 50km씩 쉬지 않고 완주했다.

이듬해 2007년에는 푸르메재단이 주최한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국제마라톤대회에서 참가했다. 당시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배형진 씨가 함께했으며, 전 씨는 풀코스에 출전해 2위(은메달)에 입상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으로 받은 상금이었다”며 “70만 원 정도였는데 원화로 꼭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모두 줬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 자리를 빌려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다”며 “아내의 격려 덕에 지금까지 운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신나게 달리죠. 그러다 점점 생각이 사라져요. 완주를 목표로 오로지 달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남아요. 결승선에 도착하면 정말 뿌듯해요. ‘장애만 있을 뿐 별다른 건 없구나’를 몸소 느끼죠.”

“교회에서 매일 연습했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어 마라톤을 계속하기 어려웠다. 마음이 무거울 무렵 그의 아내(이효실)가 그를 다시 일으켰다. 댄스스포츠 시연을 본 아내가 그에게 함께 하길 권유했다. 그동안 해 왔던 운동과 스포츠댄스는 전혀 달랐다. 음악을 듣고 박자를 맞춰야 했으며 정해진 동작을 수행해야만 했다.

단출했던 운동복과 달리 의상은 화려했고, 휠체어 역시도 마라톤과 달랐다. 처음 스포츠댄스를 배울 땐 강사도 없어 교회에서 연습을 이어가기도 했다. 낮에 학원에서 동작을 배우면 밤에는 교회에서 복기하고 때로는 안무를 구상하는 등 부부는 매일 같이 연습을 했다.

그는 “처음엔 낯설었지만 동작을 외우기 시작하면서 재미를 느껴 계속하게 됐다”며 “정말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세계에서도 꼽히는 부부 듀오 댄서
장애인 스포츠댄스에는 장애인과 장애인이 한 조를 이루는 듀오,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스탠딩으로 나뉜다.

전 씨와 아내 이 씨는 둘 다 휠체어 장애인으로 듀오로 활동했다. 충남에서는 아직까지도 휠체어 스포츠댄스 선수조차도 없으며 전국에서도 듀오로 활동한 부부는 이들이 유일하다고. 전 세계적으로 봐도 부부 듀오 선수는 손에 꼽는다.

그렇게 10여 년을 함께 활동하며 전국장애인체전에 출전해 순위권에 입상하고 국가대표로 나서는 등 휠체어로 화려하게 무대를 누렸다.

“계속 운동하고 싶어”
한편 당진은 지난해 3월 찾게 됐다. 부모님 고향이 홍성이기에 충남이 친숙했을 뿐 아니라, 한국 장애인올림픽의 역사로 꼽히는 정금종 역도선수와 친분이 있어 정 선수가 지난 10년 전 당진에서 장애인 생활공동체를 운영할 당시 당진을 많이 오갔단다. 이후 당진시장애인체육회 생활지도사로 근무하며 현재 학교를 찾아 특수학급 대상 학생에게 뉴스포츠를 지도하고 있다. 한편 그는 계속해 휠체어 스포츠댄스 선수로 활동할 예정이다.

“계속해서 운동하고 싶어요. 가슴 설레고 즐거웠던 현장이 생각나요. 코로나19로 지친 분들에게 스포츠댄스로 위안을 주고 싶어요.”

>> 전승훈 씨는?
- 1966년 출생, 석문면 통정리 거주
-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경진대회 대한민국 장애인 문화예술인상 수상
- 제100회 전국체육대회&제39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성화봉송 주자
- 무용수 전승훈 개인전 발표회 ‘몸짓, 날개를 달다’
- 평창 2018 패럴림픽 개막식 휠체어 무용
- 2019 Beigang Para Dance Sport Open IPC 휠체어 듀오 free(홀로아리랑) 1위, 휠체어듀오라틴 5종목 2위, 휠체어 싱글댄스 4위 등 다수 입상
 


한수미  d9111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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