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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진포구
  • 입력 2021.02.23 16:06
  • 수정 2021.03.15 21:43
  • 호수 1344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오섬포구 1
당진의 관문이자 대표 항구 ‘오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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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전부터 당진은 해상교통이 발달했다. 포구의 기능도 주로 세곡 운반에 비중을 두었다.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포구들은 점차 쇠퇴해 이제는 옛 지명이나 문헌을 통해 당시의 명성을 가늠할 뿐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많은 지역주민들에게 당진의 관문이자 대표 항구로 기억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오섬이다.

송산면 오섬은 일제 강점기에 인천기선회사가 선박을 독점해 운영했는데 이곳에서 인천으로 수출되는 곡물이 1년에 수십만 석에 달했으며 상당수의 승객이 매일 왕래하던 곳이었다. 인천행 증기선은 1960년대 말까지도 명맥을 유지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섬에는 어선들도 많았다. 1960년대 초반에는 김광배 씨가 운영하는 닻배(풍선)가 두 대 있었으며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동력선이 등장해 어선이 10여 척으로 늘었다. 이 때의 어선들은 오섬 인근에서 조업하는 소규모 어선부터 연평도 흑산도 근해까지 올라가 조업하는 중급 규모의 어선들까지 다양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철선으로 바뀌었으며 조업 범위도 동지나 해상으로 확대됐다. 그러다 19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오섬항 일대에 점차 토사가 쌓여 어선들의 입항이 어려워졌다. 더불어 장기간 조업을 위해 필요했던 얼음 공장이 당진에 없어 점차적으로 어선의 출입이 줄어들었고 종국에는 석문방조제가 막히면서 바닷물의 흐름까지 막혔다.

우현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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