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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오섬포구 2 북한 출신 피난민, 옹진서 오섬으로 대거 이주

당진시대l승인2021.03.03 10:38l(13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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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섬포구에 대해 구술자들이 말한 내용 중 가장 오래된 기억은 1950년대의 이야기다. 올해 94세인 고간난 할머니는 고령의 나이에도 옛 기억이 또렷했다.

순성면 갈산리가 고향인 할머니는 스무 살에 오도리로 시집와 74년째 살고 있다. 할머니가 시집왔을 때만 해도 오섬은 집이 10채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러나 6.25전쟁을 겪으면서 발생한 피난민들이 1960년대 초 옹진군 덕적도 등지에서 배를 타고 오섬으로 대거 이주해오면서 인구가 늘어났다. 

“처음에 왔을 때는 집이 8~9채 정도 됐고 6.25전쟁이 지나고 나서 피난민들이 왔지. 그때 중선만 서너 척 됐고, 집을 지어서 여기가 100가구나 됐었어. 그때 피난민이 방을 달라고 해서 우리 곁방을 줬었지. 한 열흘 거기서 먹고 잤지. 그랬더니 나중에 신세 지고 고맙게 살았다고 고무신을 부쳤더라고. 그 생각이 나. 참 옛날 일이여.” (고간난)  

1970년대 오섬에서 새마을지도자를 지낸 안명수 씨 역시 피난민들의 이주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저 어릴 땐 오섬에 50~60 가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북에서 피난 나온 사람들이 옹진 쪽에 있다가 오섬으로 이주해왔어요. 한창 많을 때에는 104세대까지 됐었죠. 제가 알기로는 옹진에서 선주들이 오니까 선원들이 쭉 따라왔던 것 같아요.”

우현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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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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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상준 2021-03-03 16:32:50

    고향이야기가 나오니 반갑기도하고 현재의 오섬을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 가득합니다. 어릴적 뛰어놀던 덜마당, 배터, 북성거지.... 새마을 지도자셨던 명수 아저씨는 어린 우리들에게 많은 꿈을 갖게 해준 고마운 분이셨지요. 그 시절의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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