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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1.03.03 10:43
  • 호수 1345

[칼럼]이종열 시인
3주 간 도서관 코로나19 방역 공공근로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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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指鹿爲馬)라 함은 중국 진나라 때 환관 조고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데서 비롯된 고사성어로 ‘작은 권세를 가지고 횡포를 부린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당진시립도서관에서 코로나19 방역 공공근로를 3주 동안 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보게 됐다. 도서관에 들어올 때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라도 QR체크를 하거나 출입명부를 작성해야 한다. 도서관에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명부 작성을 하도록 하는 것이 이곳에서 내가 맡고 있는 일이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러한 수칙을 잘 따라준다. 적으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가 찾아서 명부에 기재하고 가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몇 명이 단체로 독서토론을 하기 위해 왔는지 도서열람를 하러 왔는지 명부 작성을 하지 않고 시선을 외면하며 우르르 가버리거나 그 중 한 명을 간신히 잡아 명부작성을 해달라 하면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인상을 쓰고 간다. 출입명부 작성 일을 맡은 내가 그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싶다. 

또 어떤 날에는 값비싼 양복 깃에 공공기관 배지를 달고 와서는 아무런 인증 없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길에 명부 기재를 재차 요구하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작성을 하고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양 뒤돌아 한 팔을 번쩍 들고 무척 불쾌하다는 식으로 나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가 하면 어느 취업 준비생으로 보이는 30대 초반의 남성은 명부를 작성해달라니 “내가 두 번 요구하지 말랬지?”라고 반말을 하면서 “이름을 기억하거나 마스크 쓴 얼굴을 기억해야지 공공근로가 뭐하는 거냐?”라며 나에게 따진다. 5시간 근무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어떻게 일일이 사람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명부 이름를 보면 알 것 아니냐고 공공근로가 그런 일을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진다.

그 청년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인데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이런 일들이 어디 도서관 출입 현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아마도 사회 전반에 만연된 일이 아닐까 싶다.

지금 이러한 당진 모습은 17세기 초 이탈리아 남부 어느 한 도시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무척이나 씁쓸하다. 오스만 제국을 오가던 베네치아 상인들로 인해 전파된 흑사병이 이탈리아 남부 여러 도시에서 만연했을 때, 전염병 전파를 피해 귀족과 상인 및 성직자들은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별도의 생활한다. 그러다 흑사병에 걸렸을 때 일반 군중들과 함께 생활했기에 귀족과 성직자들에 비해 대다수 민중들은 수십 배의 피해를 보았다. 

1시간 전에 나갔다가 도서관에 다시 들어와도 내가 코로나 감염지역에 가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아침에 체크했으니 저녁에 안 한다, 나는 특권층이라 안 해도 된다, 나를 기억해둬라, 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강압적인 행동이야 말로 전형적인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아닌가 싶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사상 초유의 전염병으로 모두가 힘들고 모든 것이 어수선한 시대이다. 언제 이 상황이 종식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또한 모든 것이 치유된다 해도 코로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 모두를 치유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보듬어주고 안아주는 따뜻한 마음과 남을 먼저 배려해주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동학에서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는 말을 강조한다. 너의 마음은 나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고 감싸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스스로가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힘의 원천이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일반 시민임를 깨닫고 나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남을 배려하는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 이종열 시인
-서울 출생
-시집 <4막2장>, <마지막 파르티잔> 
-읍내동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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