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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1.03.03 10:44
  • 호수 1345

[기고]류종인 나루문학회 회장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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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불만에서 촉발된 검찰의 압수수색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삭제 문건 자료 중 ‘정부가 북한 원전 건설 지원’이라는 문건이 불거졌다. 여당에서는 산업부 내부 검토자료일 뿐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하고, 야당에서는 이를 지시한 윗선을 밝히라며 시끄럽다.

남북에 각자의 정부가 들어설 때만 해도 북한은 전기가 남았고 남한은 전기가 부족했었는데 오늘날에는 완전히 역전되어 북한의 전기 부족은 심각한 실정인가 보다. 남북 간에 협력이 가능한 부분을 찾아 교역 또는 교류를 확대하면서 통일을 이루려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 어떤 얘긴들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해프닝으로 끝나긴했지만 전기는 21세기 문명사회에서 두 얼굴을 극명히 하고 있다.

오늘의 문명은 전기가 선도헀음이 자명하다. 생활 전반의 전기사용이 일상화되어 있는 현상을 뒤집어 전기가 없던 시절을 회상해 보면 전기가 그렇게 신통할 수가 없다. 등잔불 밑에서 또는 반딧불을 눈 위에 비춰 책을 읽었던 이야기부터 오늘날 정전이 되었을 때 모든 것이 멈추고 암흑세계가 되는 건 상상조차 어렵지 않다. 순간이라도 병원의 생명유지장치 이용환자, 수술 중인 경우, 고층아파트 이동수단인 엘리베이터 등의 작동을 위해서 자가발전시설은 극히 일시적이나마 임시변통은 하겠지만 전기의 소중함은 더 이상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년에 개통예정인 서해선 전철을 비롯한 철도의 전철화 사업, 전기자동차 시대의 도래, 주방을 점령해가는 인덕션, 냉난방 수요의 확산 등 전기의 효용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런가 하면 합선이나 고장은 엄청난 재난을 가져오고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같은 전기 생산시설에서 일어난 사고는 지구환경에 치명상을 가져오고 있으니 전기의 두 얼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문제에 직면하자 세계 각국이 앞다퉈 신재생에너지 생산에 천착하게 되고, 우리나라도 탈원전 정책으로 가는 동시에 석탄발전이 가져오는 환경파괴 때문에 증설하지 않고 점차 폐기해나가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전국 화력발전의 절반을 충청남도에서 생산하고 있고 그 발전소가 입지한 보령, 태안, 당진에 근무해 본 나로서는 환경 공해 문제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다. 오죽하면 선하지(線下地) 보상과 지역에 대한 지원, 전기료 감면 등을 매개로 지역민의 원성을 무마하려 하지만 끝 모를 건강상의 문제가 상존하는 등 환경파괴의 주범인 건 확실하다.

나는 이십여 년 전 태양광발전사업이 정부의 보조사업으로 추진될 때부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전라도 지방을 비롯한 여러 지역을 들러보기도 했었다. 농경지에다 설치할까 해서였는데 자기자본 조달이 부담스럽고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소심증으로 실행을 못 하다가 2년 전에서야 100kw 미만 1기를 설치했고 한전과 20년간 고정가격으로 매전계약을 맺었다.

오백여 평의 밭에서 한 달에 평균 이백여 만원의 전기 판매금액을 수입하고 있으니 매년 떨어지는 매전계약 단가을 감안하면 서둘러 한 기를 더 설치하고 싶었다. 작년 7월에 식구 명의로 한 기를 증설하고자 발전사업허가를 신청했건만 허가가 지연되다가 11월 말에서야 허가통보를 받았다. 1개월 이내에 최소한 ‘사용전검사’를 받아야 2020년 단가로 20년을 계약할 수 있었는데 시공업체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시한을 이틀 앞둔 12월 29일 점검을 받아냈다.

주민수용성을 강조하는 허가부서의 입장에서 주변 농가 한 두 집이 동의를 안 해준 게 지연의 이유였다. 아로니아를 심었다가 세계자유무역협정(FTA)의 영향으로 소득이 없어 다 키운 작목을 뽑아 없애는 이웃의 애로는 아랑곳없이 ‘하얀 꽃을 피우는 아로니아가 예뻐서 이사 왔는데 저는 반대합니다’ 하는 이웃의 아낙에게 괘씸한 감정을 사게 되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뽑는다는 속담이 이런 경우지 싶었다.

반대를 해도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허거늘 전자파 피해, 풍치 저감, 햇빛 반사, 폐기물 처리 등 잘못된 보도나 상식을 내세워 이웃 농가의 햇볕농사에 훼방을 놓으려는 잘못을 이해 설득시키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합리적인 자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설득했는데 그의 최종답변은 ‘내가 싫은 걸 어떻게 해요’였다. 저간의 상황를 파악한 당국이 허가를 내줘서 일이 막바지에 이르러서였다. 

생산하는 전기를 송전하기 위해서 삼상(三相)으로 변압기를 설치하는 공사가 시작되자 몇 분 만에 백여 미터 떨어진 위치의 전신주에 붙어있던 변압기가 고장을 일으키며 주변에 정전이 되고 말았다. 그 변압기는 누수로 인하여 내 공사와 무관하게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고장이 발생했던 것이다. 

“친정어머니가 와서 생명유지장치를 사용하고 있는 중인데 정전을 시키면 어떡해요.”
공사업자에게 하는 항의는 내 알 바 없다는 듯 막무가내였다. 전기의 소중함은 뻐저리게 느끼면서도 생산시설이 내 주변에 설치되는 건 싫다는 두 얼굴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는 참 벅차다.

“태양광 그리 하고 싶으면 당신 집 안방에나 설치해라.”
인근 마을 입구에 써 붙인 현수막이 오늘날 두 얼굴의 주민을 대변하고 있다. 내 집으로 올라오는 입구에 ‘신재생에너지 밸리’ 이름을 달고 서 있는 장승은 오늘도 두 얼굴의 사람들을 질책하고 있는 듯하다. 

2030년 신재생 에너지 발전량 비중 20% 달성을 목표로 하는 2030계획, 대한민국 탄소 중립 선언 뿐만아니라 남북이 통일되어 하나의 국가를 이룰 때를 생각해도 그렇고, 기후변화로 무너져 내리는 빙하니, 길잃은 북극곰을 보더라도 지구환경을 보존하고 지키는 소명이 절실함을 느낀다. 태양광·풍력·수력 등 신재생에너지로의 대체는 불가피하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제발 두 얼굴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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