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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을 사랑한 스리랑카 청년 란일 씨
꿈을 키운 당진, 그리고 가족같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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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으로 떠나며 태극기 펴고 큰절
“10년 간의 한국생활 그리울 것”
“목표를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는 삶”

외국인 청년이 한 건물 앞에서 커다란 태극기를 바닥에 펼친 후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태극기에 감사의 입맞춤을 남기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이 외국인 청년은 스리랑카 출신의 란일 씨다. 지난 3일 란일 씨는 10년 간의 한국생활을 정리한 후 밤 비행기를 타고 그리웠던 고국으로 떠났다.

“10년 동안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이제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갑니다. 가난했던 제가 부자가 돼서 한국을 떠나요. 그동안 저를 챙겨줬던 회사 사장님과 직원들, 한국 엄마 김명자 씨, 필리핀 친구 데니스, 스리랑카에서 사용할 카메라 구입을 도와준 정스튜디오 사장님 모두 고마웠어요. 분명 한국이 그리울 거에요. 나중에 엄마와 함께 한국으로 여행 오겠습니다.”

 

22살에 고국 떠나 한국으로

란일 씨는 지난 2010년 7월 한국을 찾았다. 그의 나이 22살에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비행기값과 여비 89만6000원을 챙겨 한국으로 날아왔다.

기본적인 말을 배우지 않으면 한국으로 갈 수 없다는 말에 2년 동안 열심히 한국어 공부까지 했다.

 

“회사 식구들 고마워”

그가 한국, 그리고 당진을 찾아 일했던 곳은 신평면 한정리에 위치한 ‘한솔스틸’이라는 회사다. 사무용 의자와 책상 등을 제조하는 업체로, 그는 생산분체실 반장을 맡아 일했다. 회사는 란일 씨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켜줬다. 란일 씨는 “10년 동안 가족 같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며 “한국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 회사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자신을 아들처럼 챙겨준 김명자 ‘신평엄마’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스리랑카 사람들이 한국사람들을 불친절하고 나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하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착했다”고 전했다.

10년 동안의 한국생활을 마무리하고 떠날 채비를 마친 그는 김명자 씨의 도움으로 커다란 태극기를 구했다. 그리곤 가난했던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 준 회사 앞에 태극기를 펴고 고마움의 마음을 담아 큰절을 올렸다. 그는 “떠나기 3년 전부터 한국생활을 마칠 때에는 돈을 벌게 해준 회사 앞에서 태극기를 펴놓고 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모은 돈으로 새로운 꿈에 투자”

타국에서의 외로움,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어린 청년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하지만 ‘무조건 성공해서 고향에 가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고 되새기며 일에만 열중했다. 술과 담배는 전혀 하지 않았고, 핸드폰도 중고제품을 사용하는 등 최대한 아끼고 아꼈다.

그리고 그 돈으로는 고향에서 새로 펼칠 꿈에 투자키로 했다. 란일 씨는 스리랑카에 가면 흙을 빚거나 구슬을 꿰어 만든 코끼리 모형의 장식품을 유튜브 등 영상을 통해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최근 읍내동 정스튜디오 정상권 대표의 도움으로 카메라 두 대를 구입하고 조명 설치 방법까지 배웠다.

란일 씨는 “비자 문제로 5년에 한 번씩 고향에 가야했다”며 “고향에 가서 엄마가 만든 구슬공예작품을 가져와 회사 직원들에게 선물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영상 마케팅으로 한국에 스리랑카 물건을 홍보, 판매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서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다시 새로운 일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저는 낯선 땅 한국에서 혼자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10년 동안 한국에서 일하며 잘 생활할 수 있었어요. 성공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세우고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저는 오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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