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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3-28 10:4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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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계성초 앞을 지키는 허성무 씨(채운동)
교통사고로 얻은 장애…아이들 등굣길 안전 지킴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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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발 짚고 전봇대에 기대 봉사 시작
초등학생이었던 아이가 군인 돼 인사하기도
“할 수 있을 때까지 교통지도 봉사하고 싶어”

매일 아침 계성초 등굣길에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 호루라기 소리가 ‘삐익-’하고 경쾌하게 울리면 지나가던 차가 멈추고, 아이들이 길을 건너 학교를 향한다.

오전 7시 30분부터 시작해 지각하는 아이들까지 안전하게 등교시키고 나면 9시가 넘는다. 아이들이 방학하면 함께 방학하고, 개학하면 같이 개학한다. 비가 올 때는 한 손에는 우산, 한 손에는 안전지휘봉을 들고 교통지도에 나선다.

이렇게 허성무(채운동·58) 씨가 교통봉사를 한 게 무려 30년이 넘었다. 장애로 걷기조차 어렵고 자꾸만 기억을 깜빡하면서도 교통지도만큼은 잊지 않는다. 그는 “몸이 불편하니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여건이 아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순간의 사고…영안실에서 찾은 아들

한순간의 사고는 그의 삶을 반전시켰다. 허성무 씨는 호서고(10회)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입대해 1789부대 해안3대대 위병으로 근무했다. 사고는 제대 한 달여를 앞두고 받은 포상휴가에서 벌어졌다.

1985년 2월 17일. 잊을 수 없는 날짜지만 그날의 기억은 단편적인 조각들로만 남아있다. 누군가가 트럭을 빌렸고 운전을 못 했던 그는 가운데 앉았다. 마을 어디쯤 돌아선 그때가 마지막 기억이다. 송악읍 기지시리 어느 논바닥에 고꾸라져 있던 트럭을 지나가던 택시기사가 발견했다. 사고 당시 신분증이며 병역증조차 없었다.

허 씨가 군에 복귀하지 않았다는 연락이 어머니(이복영)에게 닿았다. 어머니가 수소문해 찾은 곳이 병원의 영안실이었다. 당시 그에게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 한 구’라고 명찰이 붙은 상태였다.

 

걷겠다는 의지로 재활 시작

“사고 당시 기억이 안 나요. 그때 턱뼈도 다 망가져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을 정도였대요. 뇌 수술까지 여러 번의 대수술을 거쳤죠.”

간신히 깨어났을 때만 해도 걸을 수 없었던 그는 두 개의 목발을 짚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 개의 목발로 서기까지 끝없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오로지 걷겠다는 의지로 헬스장을 다니며 일어섰다. 깨어났을 때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했다는 그는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그에게 주어진 삶과 처절하게 싸웠다. 그리고 그때부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그는 “88올림픽 이전부터 봉사를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목발을 짚고 다녔을 때는 전봇대에 기대서 교통지도 봉사를 했다”고 말했다.

 

아이들 커가는 모습 보면 뿌듯

오랜 세월만큼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단다. 한 번은 휴가 나온 군 장병이 그에게 초등학교 다닐 때 봤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러 오기도 했다. 처음엔 서먹서먹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반가움에 인사도 곧잘 해준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재미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허 씨는 “아이들이 커갈 때마다 내가 나이가 들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랜 봉사로 당진경찰서로부터 표창도 받았다. 이와 함께 교통지도를 위한 조끼와 안전지휘봉을 건네받았다고. 하지만 함께 받았던 건전지를 이사하며 모두 잃어버렸다. 희미하게 불빛이 나오는 안전지휘봉을 들고 있는 게 다소 아쉽지만 몇 푼 하지 않는 건전지를 사는 것도 부담스러운 형편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건전지를 사서 넣고 있지만 어려운 형편에 건전지 값도 부담스럽다”고 머쓱하게 말했다.

봉사 위해 오전 7시부터 등교

허 씨는 비나 눈이 오거나 날씨가 덥고 추울 때도 항상 학교 앞을 지켰다. 그의 집이 있는 탑동사거리부터 계성초까지 등교 시간에 맞춰 휠체어를 타고 오려면 오전 7시엔 출발해야 한다. 간혹 일어나지 못할 때는 어머니가 봉사하러 나가라고 일으켜 세우기도 한단다. 오랜 시간 봉사하다 보니 계성초 교장 선생님도 여럿이 바뀌었다. 봉사를 이어가줬으면 한다는 말에 굳건히 책임감을 갖고 봉사를 해온 것이 30년이 훌쩍 지났다. 특히나 이곳은 오거리인데다 우회전하며 건널목을 급히 넘어오는 차량이 간혹 있어 위험한 구간이다.

허 씨는 “불가피하게 봉사하러 못 올 때마다 접촉사고가 나곤 한다”며 “그래서 꼭 봉사를 와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운전자들이 조금만 더 조심하며 운전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장애인은 몸이 불편하고 끈기가 없어서 일찍 포기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어요. 나도 오래동안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오래 아이들 곁을 지키며 봉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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