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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할머니 손남순 씨(사기소동)
“옛날 옛적 전래동화 할머니가 들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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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구연동화 한복 입고 교구까지 직접 만들어
지난해는 모교 당진초에서 활동하기도…“행복”

어린 시절 손남순 씨(73세)는 암산을 곧잘 하던 소녀였다. 하지만 6.25 전쟁 직후 태어나 어렵게 살아와 학업을 이어갈 순 없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면서 혼자 다섯 자녀를 억척스럽게 키워내며 일생을 보냈다. 평생을 그렇게 살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이야기 할머니가 된 후 새로운 인생을 보내고 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빨간 가방에 아이들애게 들려줄 이야기와 함께 설렘을 가득 넣고 길을 나선다. 이렇게 손남순 씨는 제2의 인생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아들의 제안으로 시작

이야기 할머니 활동은 막내아들인 최순호 당진청소년·청년 극단 예능 대표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아들은 옛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지원은 했으나 걱정이 산 하나를 메울 정도였다.

손 씨는 “정년퇴직한 사람, 유치원 선생님이었던 사람, 구연동화 하던 사람 등 다들 경력이 화려했다”며 “하지만 나는 고작 아이들을 좋아하고 손주를 키운 경력밖에 없는 할머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면접관들은 손 씨의 있는 그대로의 할머니 모습에 점수를 높게 줬고 당당히 면접에 통과했다.

“연극하는 아들한테 틈틈이 교육을 받긴 했어도 긴장됐어요. 그런데 면접관이 다른 사람 말에는 안 웃더니 제 이야기엔 웃더라고요.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붙은 것 같아 대전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아들에게 미리 갈비로 턱도 냈었어요.”

 

전국 17명 우수 할머니로 선정

손 씨의 생각대로 면접은 통과였다. 하지만 첫 관문을 지나니 과제가 가득 쏟아졌다. 합격 후 2박 3일의 일정으로 안동에서 연수가 이뤄졌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할머니들과 생활하며 이야기 할머니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장기자랑 시간에는 무대로 나가 춤도 췄다. 이 순간들이 그에게는 더없이 소중했다.

연수를 마치고 6월부터 11월까지 한 달에 한 번은 대전을 오가며 교육을 받았다. 이야기 하나를 외워서 20여 명으로 구성된 이야기 할머니들 앞에서 시연했다. 노력 덕에 손 씨는 그해 연말에 서울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수료식에서 전국 17명 이야기 할머니 대표 중 한 명으로 뽑혀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우수상 받고 마음이 ‘붕’ 떴죠. 많은 사람 앞에서 상을 받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어렸을 때도 못했던 것들을 노년에 하게 되니 너무 행복했어요.”


악착같이 살았던 그 시절

손남순 씨는 전쟁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 우두동인 우두리에서 태어났다. 그 시절 다들 그랬듯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어른들의 일을 도왔다. 밭을 매고, 땔감으로 쓸 나무를 주워 오곤 했단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남순아 남순아. 너 그렇게 일하다간 나중에 뼈 상한다. 어리니까 조금씩만 일해라”고 말했단다. 어렵게 유년 시절을 보내곤 용연리에 사는 남편을 만나 1974년에 결혼했다.

자녀 다섯을 낳고 키웠다. 하지만 1991년 젊은 나이에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때 막내아들의 나이는 고작 10살, 큰딸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손 씨는 “그 시절 정신없이 살았다”고 회상했다. 아이들을 굶길 순 없기에 나물 뜯어 먹이고, 절약해가며 살았다.

미용실 갈 돈을 아끼고자 아이들을 일렬로 세워 보자기를 씌우고 머리에 바가지 덮어 직접 머리카락을 잘랐다. 실 하나로 흔들리는 이를 빼서 치과 갈 돈 아끼고, 고무대야에 물 담아 씻기며 목욕탕 갈 돈 아꼈다. 유년 시절처럼 억척스럽게 일하고 절약하며 아이들을 길러냈다.

그는 “어렵게 키웠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잘 자라 제 일을 하며 사는 걸 보면 너무 뿌듯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땐 어려워서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을 느끼지 못했는데 좋은 세상에서 손주를 키워보니 또 다르더라”며 “그래서 지금 이야기 할머니로 아이들을 만나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2년째 가는 길 항상 설레

벌써 이야기 할머니가 된 지 2년이 됐지만, 아직도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늘 떨리고 설렌다. 지난해는 신성대 부속유치원과 당진초 병설유치원에서 활동했으며, 올해는 민족사관 어린이집과 용연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를 위해 일주일에 하나의 이야기를 외워야 한다.

사업을 주관하는 한국국학진흥원이 선정하는 이야기를 한 번 읽고 녹음한다. 녹음한 것은 운전하면서, 집안일 하면서 틈틈이 듣는다. 또 한국국학진흥원의 영상을 보고 어떻게 아이들에게 이야기 들려주면 좋을지 공부한다. 여기에 필요한 도구들도 직접 만든다.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를 들려줄 적엔 금, 은, 동 도끼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나뭇잎이 등장할 땐 나뭇잎을 만들어 이마에 붙이고 이야기를 들려줬단다. 그는 “처음엔 일주일에 하나씩 이야기를 외워야 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하지만 오히려 외우고 공부하니 치매 걱정이 없어 좋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나이 들었는데 이렇게 갈 곳이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앞으로 큰 욕심 없이 이야기 할머니로 일하다가 졸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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