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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서원포(중선골) 3
신흥개발 방조제 건설하며 사라진 서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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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포가 사라진 건 1960년대인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기록은 찾지 못했으나 지역주민들의 구술에 의하면 1960년대 서원천 하류에 제방이 막히면서 바닷물의 흐름이 끊겼다. 

주민들은 이 제방을 ‘신흥개발 방조제’라 불렀다. 농지개발의 일환으로 시행된 이 사업은 신흥개발이란 회사에서 진행했으며 대표인 이승철 씨를 기리는 선정비가 남아 있다. 

“신흥개발 방조제가 막히고 나서도 정리가 금방 된 게 아니라 1970년도 초까지 한창 경지정리한다고 했었으니, 그때까지 (바닷)물이 들었지. 방조제를 막기 시작한 사람이 이승철이라고 서울사람인데, 군 장교였다고 하더라고. 개머리에 가보면 그분 선정비가 남아 있어요. 신흥개발 방조제를 막을 때 전부 밀가루 공사라고 해서 노임으로 밀가루를 받았지. 그게 480 원조사업이라고.” (이재실) 

송산면 무수리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이재극 씨 역시 신흥개발 방조제를 설명하며 ‘480 사업’을 언급했다. 이는 미 공법 480호를 근거로 미국 대외전략상 중요한 저개발국에 무상 또는 장기저리의 유산으로 지원되어온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사업을 일컫는다. 아마도 1980년대 초까지 이뤄진 미 원조사업의 일환으로 신흥개발 방조제가 건설된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송산면지에 수록된 송산면 경지정리 현황을 살펴보면 신흥농장이란 이름으로 1974년 송산과 송악의 유곡리, 동곡리, 석포리, 정곡리 일대에 361ha의 경지정리가 이뤄졌다. 이후 신흥개발 방조제에서 2km 떨어진 곳에 송산방조제가 막히면 완전히 바닷물 유입이 끊기게 되었다. 

명산리에는 서원포구 말고도 옛 나루터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중선골’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이재실 전 이장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중선골은 현재는 영락없는 산골짜기다. 

“예전에 여기에 다랭이논이 있었는데 이곳을 조기배미라고 불렀어. 왜 그리 불렀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 조기가 석어를 말하는 걸로 알고 있거든. 중선골이라는 데가 중선이 닿았던 곳(나루터)이라는 이야기가 있고, 석수암 절터 옆이라 스님들이 기숙을 했다고 중선골이라는 설도 있는데, 고려시대 때의 이야기라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

우현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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