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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북창포(굼벙골) 1
송산면 당산리에 있던 ‘송리북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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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면 당산리에 있던 옛 면천군의 북창인 송리북창은 성구미포구, 오섬포구 등과 함께 송산면의 주요 포구였다. 가야산에서 발원하는 역천이 면 경계를 따라 북류해 남양만으로 흘러들어가는 물길의 안쪽, 깊은 내륙 쪽에 북창포구가 존재했다. 

옛 송리북창은 현재 송산면 당산1리 이상하 씨 가옥의 뒷밭이 창고터, 즉 북창터이고, 뒤쪽에 인접해서 작은 언덕 너머에 살고 있는 이석면 씨가 살고 있는 집터 앞에 있는 갯고랑이 뱃터다. 

송리북창이라 불리었던 지점은 이후 지역주민들에게 굼벙골로 불리며, 송산 내륙지역의 주요 포구 역할을 해왔다. 1960년대만 해도 목선이 드나들며 새우젓과 소금은 물론이고 인근 마을에서 생산된 쌀, 배추 같은 농산물을 인천 등지로 실어 갔다. 

굼벙골 주막에서 흘러나온 노랫소리 

옛 북창포 부근에 놓은 당무교 앞에 선 최세묵 씨는 옛 기억을 더듬었다. 

“그 전에는 길이 었었고, 우리가 서 있는 이 도로가 다 바다였어. 그리고 여기에 집이 하나 있었지. 들판이 있었고 그 사이에 꼬불꼬불한 길로 학교에 다녔어. 배는 현재 (당무교를 가로지르는) 길이 있는 이곳에 배를 댔었고. 현재 남아 있는 주막 맞은편에 창고터가 남아 있었고, 당무교 건너에는 이화염전이 있었지.”

최세묵 씨는 “비가 많이 올 때면 바닷물이 뚝길로 넘쳐흘러 바지를 걷어붙이고 학교를 다녔다”며 “내 기억에 1970년대까지도 돛단배가 2~3척 오가며 새우젓 같은 걸 가져다 팔았다”고 말했다. 

현재 당산리 굼벙골에는 옛 주막집 한 채가 남아 있다. 곰벙골에는 2~3곳의 주막이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겨울철엔 접대부를 고용해 많은 주민들이 이용했다. 박정용 씨, 이유문 씨의 부인 등이 운영하였으며, 밤 늦도록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당산리, 송석리, 무수리, 삼월리 등 마을에서 자녀들이 등불을 들고 아버지를 모시러 굼벙골 주막으로 모여들곤 했다.  

 

 

 

 

 

우현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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